초보러너의 운동일지
회사를 다니지 않는 백수의 생활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잡채다.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아이를 학교 보내고 아직 따뜻한 침대로 그대로 들어가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전기장판을 OFF 하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를 미친 듯 보며 시간을 보낸다.
겨울 아침에는 여름보다 아침에 일어나기 훨씬 힘이 든다.
백수인 나는 그런 겨울에 전기장판과 한 몸이 돼 녹아버릴 지경까지 누워있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이 귀한 아침 시간을 유튜브나 보면서 놓치면 안 되지 하며 푸드덕하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잠깐 즐기려고 했을 뿐인데 타목시펜을 먹어야 하는 10시 알람이 울린다.
그제야 세수하고 어제 준비해 둔 오나오를 꺼내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먹는 것에는 아주 부지런하다.)
오나 오는 오버나이트오트밀의 줄임말인데 이게 아주 맛있다.
만드는 방법은 오트밀 2T, 치아시드 1T, 요구르트를 부어 하룻밤 냉장고에서 숙성하고 블루베리, 사과, 알룰로스를 올려서 먹는 것인데 아주 맛있다. 다이어트에도 좋고 혈당관리에도 좋은 음식이라 아침에 즐겨 먹고 있다.
TV와 함께 각종 집안일을 끝내고 보면 벌써 12시이다.
아쉬워 벌써 12시이다. 저녁 12시는 전혀 아쉽지 않은데 정오가 되는 건 싫다. 한두 시간 후면 아이가 학교 마치고 오기 때문이다. 사실 다 커서 손갈일이 없는데 혼자 있는 왜 이렇게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점심은 건너뛰고 달리러 나간다.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얇은 옷을 몇 개 겹쳐 있고 이어폰을 끼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나간다. 나오면 별것도 아닌데 운동하러 나가려고 마음먹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운동하면 개운하고 부기도 쏙 빠지는 좋은 점을 알고 있으면서 하기 전에는 마음이 참 무겁다.
그래도 나는 목표 불도저니깐 무거운 마음을 던진다. 막상 나가면 햇빛을 받으면 힘이 솟는다.
공원 계단에서 내려오면서부터 뛰고 싶어 심장이 두근 거린다.
공원에 발이 닿자마자 손목에 걸려있는 와치를 실외 달리기로 설정하고 달린다.
달리면서 목표를 정한다. 오늘은 쉬지 않고 공원 한 바퀴 달리기로 말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한 바퀴를 뛴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 바퀴를 달리면 몇 킬로가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천천히 달리던 대로 달려본다.
낮에도 운동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러닝 하시는 분들은 복장을 갖추고 달리신다. 그에 비해 내 복장은 아줌마가 따로 없다. 복장도 운동화도 갖추지 못하고 달리고 있다. 마라톤 대회 나갈 때는 운동복을 사야지 생각하며 달린다. 늘 내가 쉬는 구간을 통과한다. 그곳에서 멈출 줄 알았는데 그 후에도 꽤 괜찮았다.
'오~ 나 이렇게 성장한 건가?' 하며 기분이 좋았다.
좋았던 것도 잠시 '여기서 멈출까? 아니면 저기까지 뛰어가서 멈출까?' 하며 마음속의 약한 친구가 말을 걸어온다. 무리하지 말라며 다리를 잡아끈다.
하지만 목표를 낮게 잡으면 나는 거기서 또 멈추고 말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공원 끝까지 달려간다. 사람이 참 이상하다. 내가 목표했던 그 지점에 서면 멈춰야 하는데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 손목의 와치를 계속 확인한다.
몇 킬로를 달렸는지 몇 분이나 뛸 수 있는지 계속 확인한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