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러너의 운동일지
하루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책 한 줄이라도 읽어야 하는 다짐과는 늘 다르게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집어든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에 빠져 정신없는 와중에 '슬로우러닝'이라는 영상이 뜬다.
기억에는 생로병사 같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중장년층 에게 무릎에 무리 가지 않는 운동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실험 참가자들이 3주 동안 슬로러닝을 한 결과 체중 감소와 더불어 등등 몸에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는 내용이었다. 나이 든 분들은 뛰는 게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는데 슬로러닝은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올바른 슬로우러닝의 올바른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보폭을 좁게 한다는 것과 고개를 들고 미소를 띠며 뛰라는 것이었다.
슬로우러닝 실험참가자한 사람 대부분이 체중이 줄어든 결과를 보고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먹는 양을 예전 보다 많이 줄였는데도 살은 생각보다 빠지지 않았다. 이 모든게 타목시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유방암 환자 중 호르몬 양성 타입의 경우 타목시펜을 5년 혹은 10년을 먹는데 이 약이 갱년기를 앞당기며 살을 찌게 한다는 말이 있다.
'나도 3주 슬로우러닝을 하면 체중감소에 성공할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창을 닫았다.
다음날 공원으로 향한다. 집 앞에 2킬로는 족히 넘는 공원이 있는데 이곳을 한 바퀴를 뛰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목적지가 너무 멀면 해보기도 전에 질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공원 속에 작은 공원을 돌아보기로 한다.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더 크게 키우고 달려본다.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보폭을 넓지 않게 미소를 띠면서, 빠르게 걷는 것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뛰어 봤다.
'어,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뛸만한데.' 싶었다.
뛰다 보니 공원에서 이렇게 천천히 뛰는 할어버지를 본 적이 있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걸 내가 똑같이 하고 있네 하며 웃음이 피식 흘러 나온다.
살살 공원을 뛰다 보면 달리기 동호회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는다.
그때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가면 레이스에서 지는 느낌이 들어 괜히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 (순전히 마음뿐이다. 몸은 달려가질 못한다.)
뛰면서 생각한다. '인생이란 나만의 페이스가 있다.'라고 말이다. (고작 달리기를 하면서 인생까지 떠올리게 된다. )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뛰자고 나를 달랜다.
빠르게 달려가는 러너들을 보며 '저렇게 빨리 뛰면 아마 금방 지쳐 저 앞에 가면 걷고 있겠지.'라며 속좁은 생각까지도 한다.
슬로우러닝을 하며 빠르게 KM가 늘어났다. 슬로우러닝을 하기 전에는 500M 뛰는 것도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조금 더 달리고 싶지만 숨이 차서 다리가 금방 멈춰버렸었다. 하지만 슬로우러닝을 하면서 500M도 뛰지 못했던 내가 약 1KM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대견했다.
천천히 뛰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뛰다 힘들면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다시 러닝 할 준비를 했다.
이럴 때 뛰는 거리를 더욱 늘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제 뛰어 오늘은 다리가 말을 안 듣네 라는 핑계, 생리를 하니깐 몸이 무거워서 뛸 수가 없네. 라면 온갖 자기 합리화에 빠져버렸다.
힘들어도 1M씩이라도 조금씩 늘려가야 하는데 지금이 최선이라면서 거기 까지만했다.
슬로우러닝을 알고는 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 달리기는 1킬로에 딱 멈춰 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