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러너의 운동일지
7살 때부터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13살까지 다녔다. 누가 보면 피아니스트라도 될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질 못했다. 엄마가 가라고 하니깐 다녔고 동생처럼 안 다니겠다고
떼 부린 적도 없었다. 부모님이 하라고 하면 수동적으로 했던 아이였었다.
그 학원을 다닌 지 4-5년 후쯤 미스코리아 머리를 한 우아한 원장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정이는 참 지구력이 좋아."라고 말이다. '지구력'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채
그저 나를 칭찬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기쁜 마음으로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 나 피아노 선생님이 지구력 좋데!"라며 자랑하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게 좋은 말이야?' 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엄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확실한 엄마의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지구력이 좋다는 말은 미련하다는 거야."라고 말이다. '미련하다.'라는 단어를 곱씹어 봤던 것 같다.
엄마의 대답을 듣고는 더욱 어리둥절했었다. 중학생이 되고 피아노 학원은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이 나를 힘들게 한다.
지인이 그 말을 듣더니 "미정 씨는 강박이 좀 있네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20살 다이어트하려 처음 마음먹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18시 이후에는 절대 금식'이라는 명제를 가슴에 박아두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도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물만 먹었다. (같이 밥 먹었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다.)
마음먹은 운동을 하지 못하면 그날의 히스테리로 인해 남자친구와 대판 싸우기까지 했었다.
강박도 있지만 융통성이라는 것도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강박과 다짐으로 피아니스트는 되지 못했지만 20대의 다이어트는 성공했다.
다이어트 강박에 이어 블로그라는 다른 강박에 빠지게 된다.
잘하건 못하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포스팅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약 2년을 보냈다.
유방암으로 직업은 없어졌지만 블로거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긴 느낌이 든다.
블로그를 통해 성장하는 내가 느껴져서 멈출 수 없었던 것 같다.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한 어린 나는
"지구력이 좋다는 말은 미련하다는 거야."라는 말은 틀렸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 깨닫게 되었다.
그 미련한 지구력 덕에 달리는 내가 되었다.
지구력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삶을 목표지향적으로만 살아서 힘에 부치지고 하고
삶이 재미없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좋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더 좋은 것만 내놓으라고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내 감정을 글로 매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강박이 시작된 것이다.
잘하고 싶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달리기 훈련을 했는지 찾아본다.
하루 뛰고 이틀 쉬고 혹은 하루 뛰고 하루는 스트레칭하면서 '쉬어'주어야 한다 말한다.
더 많이 뛰기 위해서는 근육이 쉬는 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색한 단어 "쉼."
아마 이것을 몰랐으면 쉬는 날 없이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하면서 달렸을 것이다.
뛰고 나면 이틀 정도는 편하게 쉬어준다.
글도 매일매일 쓰면 좋겠지만 주말에는 글 쓰는 것도 쉬려고 한다.
내가 근질거릴 수 있도록 말이다.
달리기는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채워주는 아주 간단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