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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냄비도 할 수 있다!

초보러너의 운동일지

by 송 미정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양은냄비라고 불린다. 금방 끓고 금방 식는 양은냄비

궁금한 일이 있으면 뭐라도 할 것처럼 열을 냈다가 금방 흐지부지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덕후'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지는 사람

사람이 되었든 독서가 되었든 한 가지에 집중해서 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양은냄비는 나는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캘리그래피 한다고 했다가 여러 가지 펜 사고 금방 그만두고 코딩한다고 책 샀는데 그만두고 동영상 편집 배운다고 했다가 책 몇 장 읽지 못하고 쉽게 그만두곤 했었다.

채식주의자가 될 것처럼 했는데 결국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미라클 모닝을 습관으로 만들어 시간을 계획적으로 쓰는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늘 뭐가 될 것처럼 시작했다 금방 두는 일이 많아서 점점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그럼에도 꾸준히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원에서 운동하는 일이었다. 헬스장 보다도 공원에서 하는 운동이 좋았다.

스무 살 때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열심히 공원을 돌고 또 돌았다. 술을 안 마시는 나는 육퇴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보다는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공원을 돌고 와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매일 똑같은 헬스장은 지루하지만 찰나의 다름이 있는 공원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았다. 걷기는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저녁에 한 끼 정도는 굶고 걷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시기가 있었다. 적정체중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나 스스로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삼십 중반 때쯤 다니던 회사에서 여러 오해들로 권고사직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용증명이라는 서류를 받고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해서 생에 처음으로 입맛이 없어서 밥을 못 먹었던 시기가 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 지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정도 지나 잘 자고 잘 먹었고 했더니 안 먹어서 빠진 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2배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어? 바지가 왜 이렇게 꽉 끼지?' 하는 그 순간 알아챘어야 하는데 세탁하는 바람에 줄어들었다며 살찐 것을 믿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다 일이 바빠지고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운전을 시작하면서 평소에 걷던 양이 반에 반으로 확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운동은 점점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기 이때쯤부터 나는 더 이상 양은냄비로 살지 않았다.

시작한 일은 무조건 끝을 본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은 움직이면서 하는 것보다는 장시간 앉아서 노트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살은 더 무럭무럭 찌고 있었다.


서른 후반 유방암이 발병하고

나는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유방암에 걸리고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잘 붓지 않던 나는 붓기까지 했다.

살만해지니 걷기는 좀 심심하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더 이상 쉽게 포기하는 양은냄비가 아니다.

예전처럼 체중을 쉽사리 확확 줄어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달리는 이유는 뛸수록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불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몇 킬로를 뛰었는지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기록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참 웃기는 일이다.


암 판정을 받고 건강을 다 잃을 줄 만알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슬픔만,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달리는 오늘 마음 깊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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