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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 마라톤 대회

초보러너의 운동일지

by 송 미정

이브 전날부터 신랑과 다퉈 집안 공기는 시베리아가 따로 없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계획은 전혀 없었다. 싸우면 절대 먼저 말하지 않는 신랑인데

"크리스마스에 영화 본다고 하지 않았어?"라는 카톡이 왔다. '영화 보면 보는 거지 본다고 하지 않았어? 는 무슨 말인가? 답답하다.' 하고 생각하며 영화관 예매 사이트로 들어갔다.

역시나 크리스마스에는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딸이랑 같이 보려고 했던 <모아나> 좌석이 모두 매진이었다. 한 발짝, 아니 열 발자국은 늦은 것이다.

"영화 자리가 없어."라고 카톡에 답장을 했다. "그럼 어떻게?"라는 답답한 대답이 또 돌아오겠지 했는데

"내가 미리 예약했어."라는 예상치 못한 답장이 돌아왔다. 그 답장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크리스마스 아침 영화라 부랴부랴 준비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본 후 아웃백에서 부모님과 함께 점심식사 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아웃백 워크인 줄이 장난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오늘 아웃백은 틀렸군'하고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신랑이 아웃백 앱으로 웨이팅을 걸어놨다고 했다. 그 말에 신랑이 어찌나 멋있던지.

미처 녹지 못했던 마음이 아웃백 앱 사용으로 완벽하게 녹아내렸다.


영화가 끝났지만 점심을 먹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해서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려고 쇼핑을 했다.

딸은 부드러운 촉감을 아주 어릴 때부터 좋해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극세사 이불이 갖고 싶다고 한다.

귀여운 디자인의 이불 세트로 구입완료하고 아웃백의 순서가 될 때까지 앉아 쉬고 싶었는데

"러닝화 이야기 하지 않았어? 온 김에 운동화 하나 사."라고 신랑이 말한다.

딸이 옆에서 "내가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해줄게"라고 덧붙인다.

'뭐야 저 남자. 나 감동이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귀찮은 척 운동화 매장으로 이동한다.

매장 직원에게 어떤 운동화가 러닝화로 잘 나가냐고 묻고 착용해 보고 구입한다.

가볍기도 하고 촉감이 좋았다. 러닝화까지 샀으니 아묻따 마라톤 대회에 진짜 나가야 한다.

요즘에 '마라톤 대회를 왜 신청을 했을까. 그냥 나가지 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운동화 구입해서 나오면서 가족들에게 넌지시 "나 마라톤 대회 그냥 포기할까 봐."라고 말했더니 딸과 신랑은 내 예상과 다르게 절대 안 된다면서 끝까지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면서 나보다 더 강력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한 예상 답변은"그래. 하지 마 마라톤이 무슨 의미가 있어. 힘들면 하지 마."라고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속으로 '나 좀 말려줘~~' 하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말리면 "그렇지?" 하면서 홀랑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달리기 그게 뭐라고라고 생각했는데

달리다 보니 좀 떨리기도 하다.


집에 와 오늘 산 운동화를 신고 다시 다짐한다.

마라톤 대회는 노빠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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