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포기는 없어
일주일에 한 번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대학원 수업은 논문 읽고 발표하는 게 수업이다.
논문 그까짓 거 정리하는 게 뭐 얼마나 어렵겠나 싶었는데.
세상에... 한글인데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눈은 글을 따라가고 있지만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요약본에 가설부터 결론까지 모두 나와있지만
게다가 한글임에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수업이라 전공과는 전혀 다른 논문을 읽고 있으니 (전공 논문도 무지 어렵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읽고 또 읽어도 자꾸 같은 자리만 맴돌고 머리는 딴생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발표해야 하는 논문은 어떻게 해서든 읽고 정리해야 한다.
이럴 때 챗gpt에게 물어봐서 정리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논문을 설명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논문에서 나오는 연구모형에
독립변수가 뭔지 종속변수가 뭔지 연구방법 분석에 회귀분석이 뭔지 귀무가설은 뭔지. 부트스트래핑은 뭔지
연구결과 B값은 뭐고 P값은 뭐고 어떤 숫자가 나와야 유의한 건지...
외계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이다.
사실 나는 논문의 통계분석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는 분들은 유창하게 설명도 잘한다. 그래서 내가 더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또 그들은 교수님에게 질문도 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궁금한 것도 없다.
그저 사람들이 말할 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사실 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다.
발표하면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살짝씩 알게 되는데 모두 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남과 비교하면서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배움은 좋은 것인데 공부가 참 그렇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나의 못난 모습이 보이면서 좌절하게 된다.
논문뿐 아니라. 한국사 공부를 할 때도 분명 외웠는데 문제 풀면 틀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그 와중에 열심히 하지 않는 내가 참 답답하고)
토익 공부를 하는데 기초가 전혀 없는 내가 한심하다. 공부를 하면서 못난 내 모습을 보는 게 정말 힘들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걷기가 최고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간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하~~~ 아아 이 세상에 못할게 뭐야. 금도끼로 찍어 은도끼로 찍어 내 사전에 포기란 없어."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서 박힌다. (송가인-찍어)
그래, 이 세상에 못할게 뭐냐. 하다 보면 되겠지. 모르는 건 물어봐서 알가 가면 되는 것이지.
내 사전엔 포기란 없다!!!라고 못난 마음을 꾹 눌렀다.
제발 당당하자고,
쫄지 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