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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날, 우리는 김밥을 만들었다.

by 송 미정

대통령 선거일 아침

우리 가족은 사전투표를 하지 않고 이 날을 기다렸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이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했다.
이번 선거는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엔 정말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투표소로 가는 발걸음부터 묘하게 비장했다.

장미대선이라는 말처럼, 가는 길마다 장미꽃이 눈에 띄었다. 담벼락 사이로 피어난 장미가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다.

투표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차례가 되자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실제 도장은 작고 가볍지만, 그 한 번의 찍힘이 한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투표를 마친 뒤,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등에 도장도 꾹 찍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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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개표 방송을 기다리며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문득 김밥이 떠올랐다.
어쩐지 오늘 같은 날, 김밥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위에 여러 재료를 가지런히 놓고 돌돌 만다.
당근, 계란, 단무지, 우엉, 햄… 제각기 다른 색과 맛을 가진 재료들이 한 줄 속에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겉으로 보기엔 검은 김으로 싸인 단순한 모양이지만, 칼로 썰어 단면을 보면 알록달록한 속살이 드러난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모습 같다.

김밥을 만들며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 김밥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배경, 가치관,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
때로는 갈등이 있고, 쉽게 어우러지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김밥처럼 잘 말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선거가 또다시 국민을 나누는 계기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탄핵을 겪으며 상처 입은 마음들, 극단으로 갈라진 시선들이 다시 뒤섞여 하나가 되기를.
김밥처럼, 서로 다른 재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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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개표 방송을 보다 보니,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의 이름과 사진이 화면에 나왔다.
며칠 전 한국사 공부를 하며 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도 보였다.
그제야 ‘우리가 이렇게 투표할 수 있는 것도, 이 모든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진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여성이 이렇게 투표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도, 다 누군가가 목숨 걸고 싸워준 덕분이야.”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나도 학교에서 배웠어.”라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날, 우리는 김밥을 만들었다.
그 안에 담긴 여러 재료처럼, 국민 하나하나의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바란다.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기를.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통합된 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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