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사과정 1학기 나는 매일 흔들린다.

by 송 미정

한 게 없는데, 공부한 것도 없는데 벌써 상반기가 지나버렸다.

매일 학교를 성실히 다녔는데도 지나간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이번 학기 내내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좌절감’이었다.

누가 나를 억누른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나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좌절했다.
장학조교로 일하면서는 듣지 않아도 될 말까지 들으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회의감이 따라왔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갔고, 나는 억지로 끌어올리고 또 끌어올리기를 반복했다.


박사과정은 결국, 혼자 공부하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르는 건 교수님께 질문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공부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무엇이 궁금한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교수님들은 논문을 많이 읽고, 쓰고 싶은 주제와 비슷한 논문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신다.
다행히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올랐고, 교수님도 “좋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막상 비슷한 주제를 찾으려고 하니 거의 없다. 젠장...

주제를 정하는 것도, 정보를 찾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노력이 든다.
논문 쓰면서 응급실 세 번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세상엔 역시 쉬운 일이 없다.


장학조교로서 맡은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전부다.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안주하면 안 된다’는 불안이 커진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강사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걸까. 구직란에 들어가 강사 자리를 검색해 본다.

‘박사 재학 중이라도 강사 자리가 있다’고 했는데, 막상 수도권엔 전무하다.
자격요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또 좌절한다.
‘나는 안 되는구나. 하나도 부합하지 않네...’ 자꾸 막막해진다.

박사까지 졸업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되어 있을까 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이 될까 봐 겁이 난다.


나는 사실 학과 공부보다 다른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전자책을 한 권 더 냈고, 한국사 시험공부도 했고, 지금은 토익 공부를 하고 있다.

토익 공부를 진작에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제야 모르는 걸 공부하고 알게 되는 재미를 알았다. 그 쾌감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고, 더 시간을 들이고 싶은데, 집에 오면 공부 외에 해야 할 일이 천지다.

공부만 하면 됐던 중고등학생 시절이 그리운 요즘이다.


나는 또 그 두꺼운 토익책을 챙겨 집에 왔다.

짐만 될 걸 알면서도, 오늘도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후회한다. 매일 후회하면서, 매일 후회할 짓을 하는 내가 오늘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모든 걸 놓을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어쨌든 나는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다.
매일 흔들리지만, 그래도 또 하루를 견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이 시간들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겠지.

용기를 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뇨인과 암환자의 여름밤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