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디 잔소리보다 당뇨수치
몇 달 전부터 신랑이 자꾸 목이 마르다고 했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화장실도 자주 갔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두 달 사이 4kg이 빠졌다.
"이건 아무래도..."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당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건강검진을 받은 터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나는 조마조마했고,
신랑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말엔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퇴근하면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잔소리를 참지 못했다.
“운동 좀 해, 제발. 걷기라도 하던가.”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은 좀 쉬자.”였다.
드디어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당뇨 초기.
게다가 혈압, 콜레스테롤, 간 수치까지 전부 좋지 않았다.
신랑은 결과지를 보고 낙심했지만 이내 다짐하듯 말했다.
“운동하고,식습관도 바꿀거야.”라고 말이다
나는 콧방귀부터 뀌었다.
“왜, 그냥 막 살아. 갑자기 운동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야.”
농담 반, 진심 반이 섞인 말.
그런 내 말에 신랑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오늘 저녁에 같이 걷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무리 졸라도 침대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 신랑이 먼저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 10분 남짓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 사람과 함께 걷는 밤은 또 다른 감정이었다.
요즘 대화가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밤공기를 마시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이 참 따뜻하다.
일상적인 이야기, 별것 아닌 농담들이 서서히 우리 사이의 침묵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릴 땐 몰랐다. 왜 공원에 중년의 부부들이 그렇게 많은지.
이젠 알 것 같다. 사이가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함께 건강해지고 싶어서라는 걸.
신랑은 거울 속 팔과 다리를 보며
“근육이 너무 빠진 것 같아”라며 걱정한다.
그러더니 팔굽혀펴기, 스쿼트,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아직 10개도 채 못 넘기지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 대견하다.
작년에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식단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
냉장고를 야채로 가득 채우고
밥 먹기 전에 채소 먼저 먹어야 해”라고 했지만 신랑은 “나는 건강하니까 괜찮아.”라고 했던 사람이
요즘은 아침마다 스스로 토마토를 씻어 먹고, 식사 전엔 야채를 먼저 집는다.
체중 조절에도 신경을 쓰고, 스스로 물을 챙겨 마신다.
나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딱 한 번의 수치, 그 숫자가 남편의 마음을 바꾼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밤이지만 우리는 오늘도 산책을 나간다.
땀이 뻘뻘 흐르지만, 괜찮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건강을 핑계로 우리는 다시 함께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