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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공부하는 중년

행복한 비명

by 송 미정

대학원에서 교육조교로 일하고 있다.행정 업무 몇 가지를 마치면, 대체로 조용하고 평온한 하루가 흘러간다.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여전히 붐빈다.

고시 준비하는 학생들, 영어 문제집을 앞에 두고 한참을 집중하는 이들도 많다.
게시판 한쪽에는 이렇게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
“토익 공부, 이번엔 끝장내자!”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볼까?’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영어시험을 통과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릴 적에도 해본 적 없던 토익 공부를,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입문자용 토익 책을 샀다. 생각보다 두꺼웠고, 잠시 주춤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 강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토익은 LC(Listening)와 RC(Reading)로 나뉘어 있다.
각 파트마다 외워야 할 단어, 알아야 할 공식, 반복되는 문제 유형들이 쏟아진다.
강사들은 꿀팁을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해석 없이도 정답을 고르는 기술, 시간 단축하는 요령, 헷갈리게 나오는 포인트까지.

하지만 문제는, 그 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팁도 외워야 하고 단어도 외워야 하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하루, 이틀… 그렇게 며칠 쉬다 보면 점점 자신감이 사라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책을 펼쳤고, 이어폰을 꽂았다.

LC와 RC 강의를 끝까지 들었고, 드디어 문제도 한 번씩은 다 풀어보았다.

처음엔 영어 듣기가 숨 가쁘게 빠르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은 익숙해졌다.
문제 유형도 이제는 아주 조금 보인다.
완벽하진 않아도, 출발점에 있었던 나보다는 나아졌다.

요즘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나도 자극을 받는다.
“나도 좀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러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또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지.”


요즘 고민을 열두 살 딸에게 털어놨다.
“엄마가 요즘 토익 공부하느라 조금 힘들다.”
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너무 오바하지 말고 중간만 해.”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콕 박혔다.
죽기 살기로 하다가 지쳐서 멈춰버리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속도보다 지속이다.


어느 숏츠 영상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토익 공부를 한다면 시험 날짜부터 잡아놓고 시작하라.”

그 말을 들으니 좀 더 진지해져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직장인들도, 취업준비생도, 모두 나름의 이유로 토익을 준비한다.
나는 이제야 처음 해보는 공부에 더딘 발걸음을 떼고 있다.

영어는 여전히,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힌 존재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영어보다 디지털 툴이나 엑셀 같은 걸 배우는 게 낫지 않냐”며 웃는다.
그 말도 맞다. 요즘은 정말,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가끔은 지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심심할 틈이 없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요즘 나는 “행복한 비명이 절로 나온다.”라는 말을 한다.


예전에는 영어를 잘하는 게 곧 ‘성공’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하루 30분이라도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이 시간이, 내 삶을 조금씩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느낀다.

문제를 하나 맞히든, 틀리든 나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참 괜찮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이 느린 걸음이 결국에는
내가 바라던 결과의 어딘가 언저리쯤에는 닿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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