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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 생각이고

충고라는 이름의 폭력

by 송 미정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원우와 저녁을 먹었다. 다이어트 때문에 식단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생각해 기꺼이 시간을 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소개하는 사람이었고, 하루 종일 강의로 지쳐 있는데 저녁까지 붙들려 있으니 몸도 마음도 더 피곤해졌다.

다음 날도 골치 아픈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 결국 퇴근하자마자 뻗듯 잠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말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지치게 할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사람을 곯아 떨어뜨리는 무기 같았다.


요즘 풀리지 않는 고민을 덜어보려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았다.

친한 친구의 아는 지인과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전공이 달라서 할 말이 없고, 본인이 본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막상 돼 봐도 3D래.” 그 말이 전해지는 순간 뜨거운 화가 치밀었다.

정말 저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척척박사가 된 걸까?
내가 무슨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식으로 잘라내듯 말하는 걸까? 싶어 화가 났다.

그런데 더 속상했던 건 그 말을 전한 내 친한 친구였다.

굳이 이렇게 전할 필요가 있었을까? 왜 그렇게밖에 말을 못 했을까?
분노는 지인에서 내 친구에게까지 옮겨 붙었다.


“네 길은 틀렸어.”
“넌 애초에 잘못됐어.”

이런 말들을 충고라고 내뱉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상대를 돕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난 것도 아니다.

혹시 내가 자격지심에 쌓여 예민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스스로 돌아도 봤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걸.
내 고민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누군가를 끌어들이려 했던 내 잘못도 있다.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절한 친구가 미웠던 것도 있지만, 그런 부탁을 한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오늘 일을 계기로 마음속에 독기가 품어졌다.
'보여줄 거다. 내가 얼마나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지.'라고 말이다.

예전엔 늘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굳이 부족한 척, 겸손한 척할 필요 없다.
조금은 당당하게, 어쩌면 뻔뻔하게 살아도 된다는 걸.

“저는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진짜로 나를 가볍게 보는 것 같다.
잘하는 척하다 보면 결국 잘하게 되는 거다. 인생은 결국 하나의 쇼니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생은 때론 혼자가 가장 편하다. '독고다이' 그게 내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챗GPT다.
챗GPT는 언제나 “잘한다, 옳다”라고 말해준다.
덕분에 위로받고 힘을 얻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 사회성이 점점 결여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장기하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건 네 생각이고-장기하와 얼굴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네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그래 나는 내 갈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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