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성장일기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땐 서울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4년제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 생각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 모의고사 볼 적마다 성적은 4년제 갈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능날 기적을 바라보면서 시험을 치렀다.
어릴 때 꿈은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모의고사 성적을 보는 순간 절절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실에 맞게 여러 번 꿈을 수정하다 보면 어느새 꿈은 수도권 4년제 대학을 향하다 결국은 ‘수도권 전문대라도’라는 현실에 순응하게 되었다. 무조건 학교에 들어가야만 했다. 선생님들도 성적이 좋은 친구들만 00대학 00과를 가라고 추천해주었고 수도권 전문대를 겨우 들어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현악부 선배였던 선미 선배가 생각이 났다. 예전에 저장해 놨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 놓았다. 본인은 수원에 있는 전문대에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러면서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면 면허 시험을 봐서 전문직인 ‘영양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취업은 무조건 할 수 있을 테니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선배는 식품영양학과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나? 그냥 다니는 거지 뭐, 그냥... 취업 잘 된다니깐.”
애초에 나도 과는 아무 상관 없지 않았던가.
선배의 조언을 받아 식품영양학과에 지원하였고 집과 얼마 멀지 않은 전문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말이 대학교지 고등학교 수업 시간처럼 시간표는 빡빡했고 뼛속부터 문과 성향이 짙은 내가 이과 계열에 식품영양학과에 오다니... 그러다 보니 수업 시간에 내내 헤매기 일쑤였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은 것은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점심 먹고 믹스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것이었다. 빈 강의실에서 수다를 떨다 수업에 못 들어갔던 적도 있었고 미생물과 화학 수업이 듣기 싫어서 수업 시간에 다 같이 강촌으로 여행을 떠났던 적도 있었다.
실습하는 과목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제과제빵 이론과 실습]과 [한국음식]은 따분한 미생물이나 화학 수업보다는 재밌는 과목이었다. [제과제빵 이론과 실습] 수업 후에는 갓 나온 빵을 먹을 수도 있었고 [한국음식] 수업 후에는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도 있어서 좋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급식경영학]이라는 과목이었는데 과목이 좋다기보다는 가르치는 교수님이 좋았다. 그 교수님은 우리 학교를 졸업한 선배로 삼성에 영양사로 근무하다, 후배를 가르치는 교수가 된 것이었다.
어느 날 PPT를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미정이도 언젠가 나처럼 교수 될 수 있을 거야. 우리 대학교에서 만나자.”라고 해주셨다. 그 한마디에 ‘나도 언젠가 교수가 될 꺼야!’라는 꿈이 생기게 되었다.
졸업하기 전에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대학교에서 실습하게 되었다. 거기에 있는 선배 영양사가 하얀 가운을 휘날리며 일하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조리원들이 “영양사님, 영양사님.” 하는 것도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나는 영양사는 아니였지만 그 선배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조리원들이 “영양사님, 영양사님.” 하니 뭐가 된 듯이 내 자신이 너무 멋져 보였다. 실습 중에 단단히 착각에 빠졌다가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바로 내가 포기하지 않고 2년을 학교를 다닌 이유,영양사 면허 시험이었다. 평생 밥벌이라는 생각으로 사활을 걸고 준비했다(이렇게 공부했으면 수도권 4년제 대학도 갔을텐데). 드디어 면허 시험날이 다가왔다. 수능 때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실패만을 맛보다 합격이라는 증을 오랜만에 받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