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성장일기
잠시 내 성격을 말해보자면, 낯가림이 없는 성격으로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기심이 많아 금방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리더쉽은 조금 부족해 구성원들을 화합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만나는 조리원들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주방의 책임자로서 구성원들을 이끌지는 못했다. 첫 회사에서 는 내가 리더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그건 사장의 몫이었다.그러나 다음 회사부터는 달랐다.
이직한 곳은 안산 공단 안에 있는 산업체들을 많이 상대하는 케이터링 회사였다. 영양사 한 명이 여러 군데 산업체를 공동관리 했다. 이곳에서 공동관리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신문의 잉크를 만드는 회사에 배정받았다. 위탁 회사도,그곳에서 일하는 이모도 까다로워서 쉽지 않았다. 가끔 잉크회사 회장이 건강 상식을 물어보셔서 긴장 상태로 있어야 했다. 게다가 언제 오실지 몰랐기 때문에 항상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잉크회사 회장보다 더 힘든 이는 케이터링 소속 조리원 이모였다.이모과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모는 나를 영양사로 보기 보다는 어린 알바생쯤으로 여기고 본인의 일을 시켰다.
야채를 다듬게 하거나 주방 청소를 시켰다.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점심은 꼭 둘이 마주 앉아서 먹었다. 나가서 먹을 곳도 없었고 동료가 나와 이모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함께 밥을 먹다 보면 '밥정'이라는게 쌓인다. 나는 우리가 마실 물을 미리 떠 놓았고, 이모는 집에서 가져온 김치를 먹어보라고 주었다. 그러면서 소모적인 기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미고 말하기 전에 불편한 건 없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더욱 세심히 살피레 되었고, 이모도 이제 나를 영양사로 봐주었다.
그 다음으로 배정받은 곳은 베테랑 영양사가 하던 곳이었다.그 영양사가 그만두면서 그 자리에 내가 배정받게 된 것이었다. 같이 일하는 조리원 이모가 두 분 계셨는데, 두 분 모두 인상도 좋으시고 말투도 다정했다. 나이는 많으셨지만 일하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두 분 다 한글을 모르신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만 한글 모르는 할머니들을 봤지, 실제로는 처음 만나게 되었다. 걱정하는 나의 눈빛을 읽으셨는지 첫 번째 이모가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우리가 한글을 몰라.”
다른 이모가 덧붙이셨다.
“우리 한글 몰라도 한 번만 알려주면 잘해 걱정하지 마”
두 분의 말씀처럼, 그날 메뉴에 대해 말씀드리면 그걸 다 외우신 건지 다시 또 물어보지 않으셨다.
아침 안 먹으면 힘이 없다 하시면서 내가 출근하면 사무실 책상에 간단히 먹을 수 있게 과일, 주먹밥 등을 준비 두셨다. 한글을 모르는 게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 어떻게 알려드리면 좋을까 생각도 했었다.하지만 배식이 끝나면 항상 주무셔서 그러진 못했다. 모든 게 좋았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서 운영을 종료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근처에 큰 회사를 맡게 되었다. 그곳은 사장님 친척이라는 Y 경리가 운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Y 경리는 영양사 면허 없이 영양사 일을 하고 있었다.없었는데 놀랍게도 영양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회사가 임대해서 들어와 있었다.그러다 보니 관리자가 5명은 되었던 것 같다. 회사마다 근무 형태도 다르고 입맛도 다 다르다 보니 맞추기가 어려웠다.
특히 365일 조식, 중식, 석식, 야식까지 운영해야 했다. 야간 근무자들에게서 클레임이 가장 많이 나왔다. 아침에 출근하면 야간 근무자 있는 업체의 관리자들이 항상 나에게 신경질을 많이 냈다. 어제 새벽에 국이 짰고 고기는 냄새가 났다는 둥. 매일 이런 클레임을 듣다 보니 정신병이 올 정도였다.
야간에 자꾸 말이 나오니 조리원 이모들이 계속 그만두었다. 선배 영양사에게 물어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아는 이모들을 다 동원해서 알아보기도 하고 ,교차로 신문에 광고를 내서 면접을 보기도 하고, 인력파출부에 전화해서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을 구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관리자들의 수모와 여사님들의 부재도 견디며 일하고 있는데 Y 경리의 간섭까지 시작되었다.
Y 경리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내가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였다. 나는 참다 못해 "그럼 잘하는 네가 해." 하고 퇴사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