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알싸한 마라맛

#영양사 #성장일기

by 송 미정

이번에는 전 회사 보다 큰 케이터링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A,B,C 로 팀을 나누어 직급이 있는 영양사들이 팀원들을 챙겼다 매달 경쟁하여 이긴 팀은 인센티브를 받는 경쟁 구도였다.

새로 간 회사에는 대표를 P 회장으로 불렀다.한번은 여자 팀장이 P 회장과 같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서 나를 불렀다.

“회장님 미정 씨 얼굴 못 봤으니깐 간단히 저녁 먹고 헤어지죠”

팀장 말에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갔다.그런데 다음날 나는 다른 사업장을 배정받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얼굴도 몸매도 별로고 키도 작아서 매출이 큰 회사를 맡기는 건 안된다는 거였다. 능력은 보지도 않고 외모만 보고 결정해 버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 팀이 경쟁에서 이겨 상을 받을 때도 P 회장은 늘 “자네는 왜 이렇게 키가 작나.”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더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회사에 성과를 가져다줘서 상을 받는 건데 받을 적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본사에 들어갈 적마다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구두를 신고 갔다. 팀별로 경쟁이 심해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팀장들은 영양사들을 더 힘들게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냈다.

그러는 중에,평택에 있는 회사에 배정받게 되었다. 까다로운 업장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다. 내가 갔을 때 기존에 있던 이모들은 다 퇴사한 상태였다. 새로 면접을 봐서 그 동네에 사는 정호 이모를 뽑았다. 면접을 볼 때 성격을 중요하게 봤었는데 나와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 일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상대로 이모와 나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덕분에 본사로 들어가는 클레임의 횟수가 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팀장이 아주 흡족해하였다.

이모는 식재료를 줄여야 하니 김말이 수제로 만들자고 해도 싫은 기색 없이 척척 해내셨다.

또 주말 근무가 유 무를 밤늦게나 알게 되어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도,"걱정하지마!내가 나가서 할께!"라고 말씀하셨다.이모는 나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나도 어느덧 결혼할 즈음이 되었다. 본사 팀장이 내가 근무하는 업장에 관리자를 만났다. 둘이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영양사는 아줌마보다는 아가씨가 좋지 않아요? 이제 곧 우리 영양사 시집가는데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며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곳도 더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과 함께 이직을 결심했다.

결혼 후 첫 직장은 안산 반월 공단 안에 있는 나름 큰 중견 회사였다.직영으로 운영하는 회사여서 지원했다. 공무원처럼 '평생 직장'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말고도 면접 대기자가 5명쯤은 더 있었다.게다가 면접 보기 전에 이론 시험을 봐야 했다. 영양사 시험을 보고 얼마만에 시험을 보는건지. 시험지를 받아보니 10문제쯤 있었다. 하얀 것은 종이 검은색은 글씨였다. 시험공부를 해도 못 보는 시험을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보니 시험성적이 어땠겠나.

정신없는 시험을 보고 경영지원팀의 여자 과장의 설명을 들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70년도에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정상회담 하는 길고 둥근 테이블에 부서별 부장급들과 면접을 진행했다.

질문의 내용은 이랬다.

1. 조리원이 갑자기 안 나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 음식 맛이 없다는 클레임이 나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에 관한 것을 질문하였는데 송곳 같은 날카로운 질문은 없었다.

황당했던 질문은 '진밥을 선호하는가 고두밥을 선호하는가'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 직원들이 고두밥보다는 진밥을 선호하고 있어서 진밥을 선택한 영양사에게 점수를 더 줬다고 했다.

1차 면접이 끝나고 회사 임원분들이 들어와서 보는 2차 면접을 보았다.

1차 면접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질문 보다는 본인들의 회사가 어떤 곳인지 자랑하는게 반이었다. 이럴 거면 왜 2차까지 면접을 보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그리고 며칠 후에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설레는 첫 출근날. 처음부터 직영으로 운영한게 아니라 위탁한 케이터링 업체가 너무 못해서 직영으로 운영하게 된 상황이었다.다시 말해, 식당을 처음부터 세팅해야 헸다. 경영지원팀은 일단 영양사부터 뽑아야 했고 그게 바로 나였다. 나머지는 영양사인 나에게 맡겼다.

나도 이렇게 처음부터 맡아서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

1. 조리원을 구인한다-조식, 중식, 석식, 야식 총 6명 (중식과 석식 4명 조식과 야식 2명 )

2. 식자재 납품 업체를 선정한다-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담당자와 미팅한다.

이것들을 바로 진행하는 것도 바쁜데 PPT까지 만들어 제출해야 했다. 이전까지는 쇼핑몰에서 옷 사는 것처럼 발주만 하고 다 완성된 엑셀에 숫자만 넣으면 되는 일만 했었는데 PPT라니!

전에는 현장 일과 사무일을 동시에 했는데, 출근부터 퇴근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사무일만 하고 있으니 점심시간만 기다려졌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얼마나 점심시간을 기다리는지 알게 되었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낙’이겠구나 싶었다.어느 직원이 퇴사를 생각할 때 구내식당 음식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게 만들고 싶다 는 꿈도 꾸었다.

옆자리에 과장님의 도움으로 PPT를 겨우 완성하고, 완성한 걸로 팀원들 앞에서 1차 발표했다.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본주장님 앞에서 2차 발표까지 해야 했다. 2차 발표하는 당일,팀장님은 나보다 더 긴장하며 여러번 체크하였는데, 정작 천둥벌거숭인 나는 하나도 떨리지 않고 자신 있었다. 오히려 발표 전 그 긴장감이 너무 좋았다.

드디어 구내식당 세팅을 다 마치고 새로운 조리원들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식을 맡은 조리원 네 분, 인숙 이모, 순정 이모, 윤영 이모, 형숙 이모는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네 분이 손발이 척척 맞았고 일을 정말 잘하셨다. 게다가 다들 초등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위생까지 완벽했다.모두 경력이 비슷했으나 인숙 이모가 나이가 가장 많아 조리장 역할을 맡았다.인숙 이모는 엄마같이 따뜻하고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분이었다.신메뉴가 나가게 되는 날은 항상 집에서 연구도 해오셨다.

순정 이모는 가장 귀여운 여사님이었는데 몸집도 작고 날쌘 분이셨다. 인숙 이모가 힘들 것 같으면 달려가 도와주고, 모두가 힘들어 축 처져 있을 때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해 주시는 분이다.

윤영 이모는 가장 터프하신 분이었다. 시설 설비를 아주 정확하게 잘 아셨다. 전기가 안 된다거나 가스가 안 된다고 하는 경우, 문제의 원인을 딱 잡아내시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은 뚝딱 고치셨다.

그리고 마지막 형숙 이모는 가장 무뚝뚝하고 말씀도 적은데 속정이 바다보다 깊은 분이시다. 용광로 회사다 보니 그 불이 꺼지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365일 밤낮 없이 근무해야 했다. 남자 직원이 90%인데다 당연히 노동의 강도는 높았다. 회사에서도 그런 직원들의 노고를 알아주어 직원들 식사에 신경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일하는 우리는 매우 힘들었다. '나도 이 회사 직원인데 나는 왜 대우받지 못하는 거지? 여기 직원들은 맛있는 걸로 보상받는다면 나와 조리원들은 무엇을 보상 받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신입사원 워크숍을 갔었다. 1박 2일로 가서 교육도 듣고 친목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회사 신입의 초봉을 알게 되었다.경력직으로 뽑힌 나보다 그 신입이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워크숍에서 돌아와 팀장님께 항의했다.하지만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이 꽃혔다.

“방통대는 4년제로 취급하지 않고 우리 회사에 경력이 없으면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영양사는 승진은 없어요. 고정직이에요"

영양사는 물론 조리원까지 모두 경영지원팀 소속이었다. 한 팀 이었지만 모두 정규직인 것은 아니었다.조리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였다 처음 조리원을 구인할 때 1년만 비정규로 근무하고 1년 후에는 정규직 전환해 준다고 했다. 조리원도 나도 그 약속을 믿었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거로 생각한 조리원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근무하였다.

드디어 2년이 되던 해에 경영지원팀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은 어려울 것 같다.그렇다고 그만두지 않게 잘 전달해”

왜 안 된다고 하는지 물었는데 이유는 말도 안되었다. 지금 회사에 정직원이 너무 많아 식당 조리원들까지 다 정규직으로 해주면 급여가 너무 많이 나가게 된다는 개소리였다.

조리원 이모들과 나는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런 나의 이모들에게 말도 안되는 이야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정규직만 바라보고, 고되고 힘들어도 참고 성실하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저 말을 전달할 수 있게나.

사무실에 다녀온 나를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모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대답 대신 눈물이 먼저 나왔다.내 눈물에 다들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는것을 직감하였다.괜찮다며, 왜 우냐며,도리어 내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바보처럼 엉엉 울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좋은 조건 있으면 이직하시라고 팀장님의 지시와는 다른 말을 꺼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직해도 잡지 않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결혼 3년 만에 기다리던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모들은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주방에는 절대 나오지 말라 하시고, 예쁘게 과일 깎아서 갖다주시기도 했다. 입덧이 심하진 않았지만 예전과는 컨디션도 많이 달라 힘들었다. 게다가 유산의 증상이 있어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것은 몸에 무리라고 판단했다. 자꾸 이렇게 축 처지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퇴사를 결심했다.

마지막 근무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퇴근하려는데 가장 무뚝뚝했던 형숙 이모가,그동안 함께 일해서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다른 이모들도 눈물이 그렁그렁해 잘 지내라고 아이 순산하라고 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했다. “우리 진짜 또 만나요” 하며 마지막 퇴근을 하였다.

퇴사하고 나서도 주말에 몇차례 만나 식사도 하고 가끔 연락도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끝내 이모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고 다들 더 좋은 자리고 이직하였다.

지금도 안산에 가면 이모들이 생각난다.

"다들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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