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서로 닮는다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서로의 취향까지 완벽하게 닮아갈 순 없을 것 같다.
특히 여행에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난 남미 바닷가에서 보사노바 들으며 칵테일 마시는 꿈을 꾸지만
배우자는 썩 내키지 않아 한다.
동남아 어디 조용한 바닷가에서 마사지 받으며 피로를 풀고 싶지만
배우자는 뜨거운 바다가 싫다고 한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막을 가로질러보고 싶지만
배우자는 뭐하러 가냐고 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싶지만
배우자는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내가 가자고 하면 가겠다는 애매한 대답 속에서
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는 함의도 읽을 수 있을만큼
서로의 취향을 잘 알게 되는 결혼생활.
억지로 갈 순 있겠지만 시간낭비 돈낭비 감정낭비라는 걸 알면서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꿈만 꾸고 있었는데
나에겐 아이가 있었지!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꿈을 배우자가 아닌 아이와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보다 보호자의 취향을 유연하게 흡수하는 자녀.
그래, 자녀는 대안이 아니라 최고의 선택이다.
물론 더 자라서 자녀의 취향이 부모와 비슷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둘 중 하나는 따라오겠지.
의지의 대상이 꼭 배우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엄청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가족은 때론 짐이라곤 하지만
천군만마로 서로에게 얽혀있길.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천군만마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