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에 대하여

제주오름과 삶

by 은정



동 틀 무렵의 하늘,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다.

초봄을 앞둔 찬 공기가 콧속을 타고 몸 안으로 스며 온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앞두고 현실을 마주 보기 전 가볍게 산책이나 할 생각으로 집 근처 오름을 찾았다. 나는 맑은 공기에 머릿속을 개운하게 비워내고 싶을 때는 종종 새벽에 오름에 오르곤 한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고요한 새벽의 오름.

여름의 오름은 바닥에 짙게 깔린 안개를 밟고 일어서는 듯 장엄한 일출을 보여준다.

겨울의 오름은 눈보라가 울부짖던 밤을 새우고 하얗고 깨끗한 것들을 소복이 업은 채 눈을 뜬다.

같은 새벽이라도, 오름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이다.


동틀 무렵 바람이 부는 오름.


집에서 차로 얼마가지 않아 보이는 오름은 낮고 완만했다.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통나무로 지그재그로 짜놓은 입구를 지나 이제는 누렇게 삭아가는 억새군락 속으로 들어간다.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고 느긋한 짚길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람 소리, 또 바람 소리.

2월의 오름은 바람이 주인이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짚길이 끝나는 곳에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제주의 오름에서는 방목하는 말과 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야말로 먹고살 만한 일이라면 다 했었는데, 소도 몇 마리 키웠었다. 제주 사람들은 주로 소나 말을 방목해서 길렀다. 상강 무렵(10월 하순) 소를 집으로 들이고, 입하(5월 초순)가 되면 다시 오름으로 보낸다. 동네에는 우리 집 말고도 소를 키우는 집이 꽤 많았고, 몇몇 집들이 모여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오름에 있는 소들을 돌봤다. 당번을 정해서 쇠테우리(목동)가 되는 것이다. 대략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차례가 돌아왔다.


서럽도록 푸르른 계절,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마흔 살 아빠의 오토바이는 도시락을 싣고 궁대오름으로, 좌보미오름으로, 소들과 바쁘게 누비고 다녔다. 낮에는 소들을 돌보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고기보다도 더 맛있다는 말똥버섯을 한가득 따와 온 가족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가을 어귀, 한가득 억새가 바람을 타고 너울거릴 무렵, 오름 중턱에서는 쇠촐을 비는 (소의 여물을 베는) 손이 바쁘다. 경운기나 트럭이 흥창흥창(흔들흔들, 기우뚱기우뚱, 출렁출렁) 비포장 도로를 오르다가 더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다다르면 새 (억새)가 가득한 곳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갔다. 어른키만 한 큰 낫으로 부지런히 베어 낸 쇠촐(소의 여물)은 진불레나 집 뒤편쯤에 차곡차곡 쌓아 더미로 만들어져, 쇠막(축사)으로 돌아온 소들을 겨우내 먹였다. 진불레 버덕, 콩을 수확하고 난 뒤 나오는 콩 가지도 훌륭한 여물이 되었다.


안녕 송아지. 오름의 것을 먹고 자란다

촐 먹는 소의 입을 쳐다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지푸라기 몇 가닥씩 먹이랍시고 입 앞에다 갖다 주면, 이젠 그만 씹고 삼켜도 될 것 같은데 한참을 우물거렸다. 귓가에 와득와득 여물 씹는 소리가 쇠똥냄새처럼 구수했다. 지루한 겨울, 나는 한참을 쇠막에 머물러있었다.


오름 중턱, 소나 말 만큼 자주 볼 수있는 것이 무덤이다.


쭉 뻗은 중산간 도로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무덤은 어느 오름에서나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부드러운 오름능선을 타고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봉분들이 우리에게 삶도 죽음도 일상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이라 일러주는 듯하다.

제주말로 무덤을 ‘산’이라 하고, 무덤주위를 둘러싼 돌담을 ‘산담’이라고 한다. ‘산담’은 말과 소들이 먹이를 뜯어먹다가 봉분을 해치는 것을 막기도 하고, 말과 소에게 새로 난 여린 풀을 먹이고자 완전히 자란 센 풀을 불에 태울 때 불길이 무덤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도 했다.


왕할머니 산소는 무밭에 가는 길에 있었다. 무밭 역시 거친 길을 흥창거리며 가야 하는 중산간의 오름 아랫자락쯤에 있었는데, 오며 가며 자주 보니 나는 왕할머니 산이 무섭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 어쩌다 한 번씩 쇠촐밭(소여물인 억새를 베는 곳)에 쫓아갔을 때, 엄마 아빠는 일을 하고, 나는 경운기에서 놀거나 산담 옆에서 메뚜기나 잠자리 같은 것을 잡았다. 주변을 마음껏 돌아다녔지만, 담을 넘어 봉분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의했다. 너그러운 오름의 품 안에서는 고되고 억척스러운 삶도, 죽은 영혼의 안식도, 자라나는 아이의 천진함도 공존했다.


오름의 아랫자락에는 밭들이 펼쳐졌다. 콩·깨·유채, 무나 감자 같은 밭작물들이 각자 자기 계절을 찾아 무럭무럭 자라났다. 밭 둘레에는 “밭담”을 쌓았다. 밭담은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무릎만 한 낮은 키로 짐승들의 출입을 막고 경계를 알려주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이 필 무렵에는 샛노란 밭을, 땅 속에서 무가 기척도 없이 커갈 때는 짙푸른 밭을, 머리카락처럼 까만 돌담이 오망오망(옹기종기) 감싸 둘렀다.

오름 꼭대기에서 본 아래 세상은 원색의 화려한 향연이고, 대지의 작품이다. 오름 밑자락에 자리 잡은 삶의 한복판에서는 아빠는 밭을 갈았고, 엄마는 누구보다도 낮게 흙 위에 엎드려 작물을 심고 거둬들였다.




아직 꼭대기에 다다르지 않은 채 탐방로 짚길이 끝났다.

얼기설기 짜인 통나무 입구가 풀을 뜯는 말들을 가로막는다.

평화로이 아침을 보내는 말의 무리 뒤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아마 계속 걸어갔다면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보는 겨울 아침의 절경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만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오늘, 중턱에서 정상까지의 길은 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펜스 앞에 서서 풀을 뜯는 말을 바라보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친한척하며 한 마리가 다가왔다. 깡마른 다리를 쭉 뻗은 새끼말이 어미의 젖을 먹는다. 능선을 달리며 내려오는 말들도 보인다



출근 전의 나는 말들과 더불어 너그러운 오름의 품에 머물러 있었다.



새벽 용눈이 오름. 말과 사람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