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소녀

초네따이(촌아이)의 호기심

by 은정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열망.

존중하고 좋아하고 우러러보고자 욕구.

충족되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욕심 없이 계속 생각하고 바라고 그리워하는 마음.


동경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귀하고 순수한 감정이다.

동경은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 만난 반가운 오아시스다.

동경은 행운이다.

동경은 기적이다.

동경은 제법 사랑스럽다.




우리 가족은 쭉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아빠의 형제와 아빠의 사촌 형제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살았다. 하나 같이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떠나던 시절, 아빠의 형제들도 기꺼이 그 행렬에 동참했고, 곧 그곳에서 터를 잡고, 아이를 낳았다. 판찌롱하게(번듯하게) 서울 사람이 다 된 그들은 명절이면 제주로 내려왔다. 곤밥 먹은 소리(쌀밥 먹은 소리. 육지말, 서울말)와 사투리가 섞인 웃음 뒤로 마을 입구에 붙은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추석과 설날, 사촌 언니를 봤다. 우리는 1년에 두 번 만났다. 나랑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는 얼굴이 하얗고 갸름했다. 반으로 묶은 긴 머리에 원피스를 즐겨 입고 리본이 달린 미니 크로스백을 메고 다녔다. 그 안에 뭐가 있냐고 호기심에 물어보면, 언니는 생긋 웃으며 가방 안을 보여줬다. 촤라라한 플라스틱 무지개 스프링과 롯데 월드에서 샀다는 너구리 캐릭터 전자시계, 알록달록한 공기알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언니가 다정한 서울 말씨로 “안녕” 하고 부르면 부드러운 파동이 마치 공기 중으로 우왕우왕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와 동생과 언니와 내 동갑내기 사촌은 건넛방에 모여 놀았다.

코시롱한(고소한) 지짐이 지지는 기름 냄새가 방문 틈으로 들어올 때쯤 언니는 ‘서울 공기’라면서 요상한 방식의 공기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우아! 저건 또 어떻게 하는 거지? 언니의 손놀림은 내 눈에는 공기 할 때마저도 펄럭거리면서 뭔가 우아해 보였다. 2박 3일 연휴 내내 같이 모여 공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서울 공기’를 터득했다. 그렇게 터득한 공기 기술을, 나중에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나도 언니처럼 우아한 서울 말씨를 쓰며 가르쳐 주기도 했다.



명절 당일 아침이면 새벽부터 장남인 우리 할아버지네 집으로 버글버글 사람들이 모였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또 다음 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할아버지는 4형제 중 큰아들이었고, 모두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샛 할아버지, 말젓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네. 집안에 돌아가신 분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면 차례를 지내러 다 돌았다. 맹질 먹으러 가는 길(명절 차례 지내러 가는 길), 동네를 돌아다는 개들이 꼬리를 치며 다가왔지만 언니는 개를 무서워했다. 물론 나도 개들이 무서웠지만, 설레발을 치면 좋다고 덤비니, 숨을 참고 모른 척 아무렇지 않게 가면 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같이 가는 또래 서울 여자 애들은 무섭다며 엄마! 하고 부르면 그럼 뒤 따라오던 며느리 부대들이 멀리서 조심하라고 소리쳤는데, 그 와중에도 말투가 무척 생소하고 참 서울스럽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주로 명절에 볼 수 있었지만, 어쩌다 한 번 여름방학 때 온 적이 있었다. 여름 챙모자를 쓴 언니는 방학 숙제로 매미를 잡겠다고 플라스틱 형광색 곤충 채집통이랑 잠자리채를 들고 나타났다.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확 덮으면 될 걸 저런 거 까지 휘둘러가면서 잡는다니... 동네에서 소문난 운동 신경 꽝에 쫄보인 내가 봐도 그건 좀 호들갑 아닌가 싶었지만 쨍한 형광색 곤충 채집통은 좀 예뻐 보여서 힐끗거렸다. 우리는 많이, 되도록 아주 많이 잡으러, 매미 소리를 찾아 동네를 돌았다. 시멘트 길 따라 괸당 할망네 집도 지나고, 동네 친구네 집도 지나고, 감귤 선과장도 지나 수백 년 된 폭낭 아래에 도착했다.

매미도 실컷 잡고 개미 행렬도 구경했다. 잡은 매미들을 형광색 곤충 채집통과 검정 비닐 봉다리에 담아 날아가지 않게 손으로 꽉 쥐었다. 돌아오는 길 옆에 아무렇게나 자란 봉숭아 꽃잎을 보고 신나서 한가득 땄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언니랑 나는 그것들을 돌로 빻아서 조심스레 뭉쳐 손톱에 붙였다. 서툰 꽃단장에 손가락마다 첫째 마디들은 통으로 물이 들었다.



언니네가 돌아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할아버지는 작은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다 불러 모았다. 그래서 3대가 다 같이 모여 아침밥을 먹고 공항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였던 아빠 친구는 할아버지께 세배를 했다. 모여서 적당히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큰 아빠는 전화로 다음 명절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택시 트렁크에 잔뜩 짐들을 실었다. 갈 사람들이 떠나고 남아있는 꼬맹이들은 아쉬움에 엉엉 울었다.




그렇게 연휴가 지났다. 평소처럼 학교로 갔다. 가면서 언니와 서울을 생각했다. 학교 가는 길 파아란 무밭을 지나며, 버스 정류장 표지판도 없이 부부석이 있는 폭낭 앞에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보며, 목줄을 메지 않은 개들이 돌아다니던 리사무소 앞을 지나며,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풍경을 지나며, 계속 생각했다.

명절이면 온갖 환영을 받고 내려오는 서울 사람들. 나에게 서울은 전화로 미리 표를 예약해서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있는 곳이다. 너구리 전자시계를 차고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곳이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말이 오가는 서울. 서울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까? 아파트에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은 바람을 타고 천진한 열 살 꼬맹이의 가슴에서 여중생의 섬세한 감성을 타고 진지하고 뜨거운 젊은이의 가슴으로 이어졌다.

혼잡한 지하철과 높은 빌딩 사이 빽빽이 들어선 차들, 언니가 말해주었던 서울의 학교들. 남자 셋 여자 셋 주인공 같은 청춘들, 낯설고 기대되는 쨍한 것들. 그곳에는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게, 아직 맡아본 적 없는 냄새와 시끄러운 소리들이 마구마구 맴돌고 있을 것이다. 거침없이 손을 내밀어 그것들을 마구마구 만지고, 더 넓은 곳으로 발을 뻗고 싶었다. 서울을, 쉽게 갈 수 없는 그곳을, 새로운 것들을, 언니가 놓고 간 가방 속 스프링 장난감과 형광색 곤충 채집통 같은 멋져 보이는 그것들을 동경했다.



까만 우주가 반짝이는 밤, 흙 묻은 슬리퍼를 신고 폭낭 아래 개미군단을 구경하며 여물어간 맑고 뽀얀 상상력이 습기 먹은 바람을 타고 신나게 공항으로 날아간다. 다행히 막 이륙하려는 비행기가 아직 문을 닫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날았다. 동경은 떠올랐다. 설렘은 섬과 육지사이 하늘을 가르며 무한히 나아갔다. 잠이 든 열 살 꿈속, 동그라미가 온몸의 피부를 활짝 열어 그 모든 것들을 한껏 들이마시며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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