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갈옷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눈부신 계절, 풋감을 땄다. 무명천에 감물을 들이기 위해서다.
제주에서는 ‘ 갈중이’라고 감물 염색한 옷을 입었는데, 이 옷은 소락하고 버쩍버쩍하여 땀이 잘 안 달라붙고, 자외선도 차단되어 마치 청바지처럼 주로 노동할 때 입거나 혹은 일상복으로 입었었다. 따지고 보면 일상이 노동이니 그 말이 그 말이긴 하다. 간혹 때깔 좋게 물 들어진 천으로 신경 써서 고운 옷을 지어 입으면 그 옷이 외출복이 되기도 했었다.
여름이면 엄마는 나에게 갈몸빼를 지어 입혀주곤 했는데, 어릴 때는 천이 보드랍지도 않고, 나이 들어 보이고 촌스러워서 그렇게 입기가 싫었다. 지금은 멋들어진 패션아이템으로 오일장이나 민속촌 같은 곳에서 감물 들인 스카프나 모자 등과 함께 비싸게 팔리지만 말이다.
내가 일곱여덟 살쯤 되었을까. 뒷마당 빨랫줄 아래에서 엄마는 감물을 들일 준비를 했다.
나는 감이라길래 뭣도 모르고 신나게 한입 베어 물었는데, 웩- 쓰고 떫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게 뭔 줄 알고 죄다 입에 넣고 보냐며 괜히 한마디 하며 엄마는 어린 아기 주먹 만한 크기의 설 읽은 감무더기를 도로로록 쏟았다. 벌건 고무 대야를 반쯤 채우고 나서는 손잡이가 달린 네모나고 묵직한 나무마께로 푹푹 빻았다.
피곤한 마께질에 초여름 햇살 사이로 싱그러운 열매가 팡팡 터질 때면 뽀얀 속살이 으깨지면서
퍼런 즙이 새어 나왔다. 감즙이 제법 나와 대야 바닥을 어느 정도 채우면 무명천을 넣었다.
가끔 아빠 여름 남방이나 나와 내 동생 티셔츠를 넣기도 했다. 그렇게 풋감 물에 드러누운 천들을 엄마는
맨발로 밟았다. 밭일을 한다고 더운 여름에도 늘 긴 옷만 입었던 젊은 시절 엄마는 얼굴은 거멓게 탔지만
발목 만은 하앴다. 서러운 하얀 발목이 꾹 꾹 천 무더기를 물들여가면, 쪼그려 앉아 구경하던 나도 신발을 벗어 달려들었다. 발바닥 흙 좀 닦고 들어오라는 잔소리에 얼른 수돗가에서 대충 물로 씻고 대야로 들어간다. 꾸욱꾹. 꾸욱꾹 깨어진 풋감 조각들과 무명천들이 와들랑와들랑 발바닥에 재미나게 닿았다. 꾸욱꾹. 꾸욱꾹. 여름습기가 우락 해도 늘 바쁜 엄마랑 이렇게나마 몸이 닿는 것이 즐겁다. 꾸욱꾹. 꾸욱꾹. 꾸욱꾹.
손으로 문대고 발로 밟아 어느 정도 물이 들어진 천들을 팡팡 털어 빨랫줄에 널었다.
아빠의 남방도 내 티셔츠도 나란히 걸렸다. 온종일, 장마가 지나고 한낮의 햇빛에 실컷 쐬고 나면,
철부지들은 소락 하게 마른 빨랫감 사이를 마구마구 지나다녔다.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든 무명천이 얼굴을 간질였다.
과랑과랑한(햇빛이 쨍쨍한) 볕에 감물 들인 천을 며칠이고 말렸다. 말리면 말릴수록 색은 더 짙어졌다. 무명천이 쪼락찐(떫은) 풋감즙을 먹고 서릿발 같은 햇볕을 입어, 아주 판판하고 튼튼해졌다. 이만이면 모지직한(마음이 굳세다, 매섭고 굳건하다) 농사꾼의 노동에도 거뜬할 것이다.
건넛방에는 자개 미싱틀이 있었다. 윤기 나는 검정 바탕에 화려해 보이는 문양과 장식이 박힌 미싱틀은
내 눈에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다.
미싱틀은 꼭 책상같이 생겼는데 몸통 왼쪽에 자리한 수납장을 열면 나 같은 어린아이 한 명은 쏙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른쪽 의자를 놓는 부분에는 미싱 하단에 발 구름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발구름판을 엉덩이로 깔고 앉고는 의자 삼아 놀았다. 엄마가 미싱질 할 때 쓰던 진짜 의자는 대문이랍시고 발구름판 앞에 가져다 놓고는 나만의 집을 완성했다.
책상머릿속 뚜껑을 열면 망아지 머리 같이 생긴 미싱이 쏙 하고 올라왔다. 망아지 입에 박힌 뾰족한 바늘이 실을 뱉어내며 천들을 이어간다.
도도도도. 도도도도.
천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유연하게 움직일 때마다 실이 수놓아지며 점점 바지의 형태를 갖춰 나갔다. 허리와 발목에는 검정 고무줄을 넣었다. 짱짱한 갈몸빼가 완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풋감물에 뻣뻣하던 갈몸빼도 입으면 입을수록, 빨면 빨수록 몸에 길들여져 갔다. 풍성한 바지통이 반바지도 아닌데 시원했다. 발목에 고무줄을 다니 끌릴 일도 없었다. 보기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 같아도 그게 아니다. 습하고 험한 땅에는 이만한 게 없다.
어른이 되어 보니,
산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해내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 똑바로 봐야 할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일들.
들이치는 파도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중심이 단단히 서지 않으면 물살에 휩쓸리기가 쉬웠다.
본질에 확 들어서지 못하고 겉도는 순간이 있다.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순간,
용기가 필요한 순간, 판판한 갈옷이 떠올랐다.
도도도도. 도도도도.
기억 속에 박음질된 반가운 감물 냄새. 고단했던 천이 곱게도 물들었었지. 살갗에 닿는 뻐덕뻐덕한 촉감이 반갑다. 대단할 것 없는 빛깔이 부적처럼 든든하게 스며왔다. 나는 잠시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