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쌓는다는 것

나의 학교 이야기

by 은정

마을에는 돌로 만들어진 성이 있었다.


과거 제주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조선 시대 이를 소탕할 목적으로 제주섬에 3개의 읍성과, 9개의 진성을 쌓았다. 그중 하나의 진성이 바로 우리 마을에 있다.

옛사람들이 지천에 널린 돌덩이를 하나씩 쌓았다. 돌을 쌓으며 우리를 살펴 달라 빌었다. 허나 끊임없는 사고로 성 쌓는 일은 어려워졌다. 지나가는 스님이 원숭이띠 어린 여자아이를 제물로 바치면 성을 쌓을 수 있다 하여 인신 공양으로 성을 쌓았고 마침내 성은 무사히 지어졌다. 아이의 억울한 한을 기리고자 당을 만들어 할망당이라 불렀다. 쌓고 또 쌓은 돌은 마을 입구를 둘렀다. 빙 둘러 그 안에서 어진 목숨들아 살아내거라 소원하며 가엾은 것들을 지켰다.


현재 마을 어귀 성 안에는 학교 운동장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나의 학교는 진성의 품 안에 있다. 성담(성을 두르는 돌담)이 학교를 두르고 있는 곳. 오색천을 휘감은 신당, 신목이 지키고 있는 곳. 그곳이 내가 졸업한 학교다.




내가 어릴 적, 도시의 학교는 한 학년에 열개 반도 넘다고 하던데, 한 학년에 딱 하나의 반, 한 학년이 열 명 남짓, 마을 꼬맹이들이 학교로 모였다. 진성이 둘러싼 학교답게 성담은 학교의 경계를 이루었고, 학교 앞 동네를 ‘성 앞’이라 불렀다. 성담과 성담 앞 오래 산 나무들 아래서 늑목을 타고 철봉에 매달렸다. 운동 신경 없는 아이들은 바닥 모래에 낙서를 하고 발바닥으로 비비작작 비벼댔다. 성담은 날쌘돌이에게도, 나 같은 겁쟁이 울보에게도 무한한 응원을 보냈다. 따순 봄에는 담 위 돌틈 향긋한 달래를 키워내 지나가는 이에게 선물했고, 가을 운동회가 열릴 때에는 기꺼이 청군 백군 본부석이 되어 주었다.


학교를 둘러싼 성담과 오래된 나무들.


교실은 언덕 위에 있었다. 성담을 두른 운동장에서 한참 놀다 교실로 들어가려면 언덕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오르막 가운데 사람이 오가는 길 옆으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비탈진 게 아주 끝내주는 놀이터였다. 사철 푸릇한 잔디밭에서 우리들은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길게 누워 익룡처럼 소리를 지르며 때굴때굴 굴러 내려왔고, 눈이 쌓이면 비료 포대를 붙들어 신나게 내질렀다.



학교 어디에나 몸통이 두꺼운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왕할아버지처럼 나이가 아주 많은 나무들 가지에 매달려 놀았고, 우리처럼 시끄럽게 나무에 매달린 매미를 잡으며 놀았다. 바닥에 떨어진 달큼한 폭낭열매를 주워 먹기도 했다.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좋을 때면, 선생님은 야외수업이랍시고 교과서를 들고 아이들을 나무 아래로 데리고 나왔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이었다. 애국조회를 하는 월요일이었는데, 그날 우리는 운동장이 아니라 키 큰 비자나무 아래 모였다. 일 학년부터 육 학년까지 바짝 줄을 서면 비자나무 아래 전교생이 들어갈 수 있었다. 짙은 이파리 내음이 코를 쳤다. 쏘아대는 햇살을 막아내며 비자낭그늘은 어린것들을 둘렀다.



성 안의 학교의 품은 푸르고 넓었지만 늘 학생이 부족했다. 우리 학년 아홉 명이 책상을 디귿자로 배열해서 앉으면 가운데 둔 선풍기 한 대의 회전 버튼에 에 온 아이들이 바람을 다 맞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내가 졸업도 채 하기 전, 학생수가 부족해서 학교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교를 잃는다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읍내의 다른 국민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학교가 없는 마을은 있을 수가 없다며 마을 어른들이 들고 일어섰다. 아빠도, 다른 집 아빠도, 아이가 다 자란 집 아빠도 저녁마다 회의에 나갔다. 이제 사람이 성 안 학교를 두를 차례가 되었다.






제법 쌀쌀해지는 11월도 좀 이른 연말이라 치는지 모임 약속을 잡는 카톡알림이 부지런히 울렸다. 그때 무사히 졸업한 구들이 서둘러 일정을 잡아보는 모양이다. 어느덧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혹은 지켜야 할 것들을 두르는 아저씨 아줌마가 되 있었다. 기꺼이 어깨 동무를 하고 몸을 둥글려 품 안의 것들이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록 말이다.


과거 왜구로부터 마을을 둘렀던 진성이, 어린시절 나와 나같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학교를 둘렀다.

이제 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된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굳건히 있는 성 앞을 지나며 이제 무엇을 어떻게 둘러야 할지, 내가 둘러 쌓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마치 지금을 점검하듯, 내 기억속 국민학교 시절을 가끔 떠올려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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