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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생각 Jan 17. 2023

외가를 지나며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91.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외가를 

방학이 돌아오면 혼자서 찾아간 적이 있었지요

여름 막바지에 옹기장수 찾아와 뜰안 가득 옹기가 쌓이고

기름장수, 소금장수, 생선장수, 소쿠리 장사꾼과

동동구루무를 가져오는 방물장수까지

집 안팎에 철새처럼 찾아들었지요


대종갓집인 외가는 크고 넓어

가설극장 패들이 와서 대문을 닫고 쪽문 열면

안마당이 뚝딱 극장이 되었지요

영화 볼 돈 없는 애들이 앵도나무를 타서

행랑채 넘어오고 그러다가 들키면

심통 난 아이들은 발전기 콘센트를 빼놓곤 했지요


나는 제일 좋은 자리 마당에 있는

우물에 기대앉아 검객 박노식과 악당 허장강의 

신나는 칼쌈 솜씨를 보았지요

지금 그 집터가 안채는 공원이 바깥채는 사당이 들어서

연못도 생겼고 마을 길목에는 옛날 외조부 이름으로 

표지판을 붙여 놓았지요


나는 오랜만에 외가를 들러

십여 년 전 행정수도가 들어오며 반쯤 잘려나간

재너머 고모네로 가던 산자락 뒤로

매일 보며 살아 보이지 않던 야트막한 산봉우리들

그윽이 바라다보았지요

없어진 외갓집 담장을 보듯 지붕을 보듯






강백년길 420mmX135mm, Woodcut Print on Paper(Croquis Book),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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