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처서비(處暑雨)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06

by 어떤 생각



처서(處暑)에 내리는

처연(凄然)한 빗소리가

밤늦도록 어둠을 쓸어내더니

뭔 일이 있기는 있었나 보다.


느티나무였다 어머니는,

바람결 따라 이파리들 뒤집으며

손을 흔드는 소리,

저녁이면 동구 밖을 향해

목 길게 빼고

발 뒤꿈치를 치켜올리는 소리,

담벼락 너머까지 들리는

보글보글 된장국 끓는 소리,

처마끝을 긋고 가는 낙숫물 소리,

창가에 홀로 앉아 내쉬던

깊고 긴 한숨 소리,

뚝 떨어지는 눈물 소리,

도둑처럼 다가오는

여명의 푸른 발소리,


화병에 담긴 리시안셔스 꽃잎마다

이슬 맺힌 걸 보면

밤새 먼 길 다녀가셨나 보다.




meet you and me_뉴욕전시, 2023, Mixed media, 288mmX309mm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