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고 속상한 날은
돼지구이에 소주 한 잔이 딱이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상추 깔고 파절이를 얹은
삼겹살도 좋지만
오래 구울수록 달고 꼬순
항정살 한 젓가락이면
토시살도 뒷전인데
세상과 맞짱 뜨고
목덜미라도 휘어잡아
흔들고 싶은 그런 날에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면
돼지 저금통이라도 일단
뜯어보시구려
돼지 한 마리에서
단 한 근 살만 발라낼 수 있다는
천 겹의 마블링이
연분홍 살코기에 콕 박힌
돼지 뒷덜미살을 한번
뜯어보시구려
깻잎 한 장 손바닥에 올려
마이너스통장은 마늘과 함께
사업한다고 날려버린
헛세월은 땡초로 삼고
바닥에서 설설 기는 주식까지
막장에 푹 찍어
얼음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센 불에 막 구워 낸
항정살 한 점과
인생의 쓴맛 단맛까지
모조리 한데 뭉쳐서
쌈 싸 먹어야지
가위질이 서툴러도
내어놓은 살만 구워낼 줄 안다면
입 크게 벌리고 걱정 없이
우울한 세상까지
씹어서 삼킬 수 있는
뭐 그런
pink pork #04, 2023, Mixed media, 320mmX345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