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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살예찬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07

by 어떤 생각



열받고 속상한 날은

돼지구이에 소주 한 잔이 딱이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상추 깔고 파절이를 얹은

삼겹살도 좋지만

오래 구울수록 달고 꼬순

항정살 한 젓가락이면

토시살도 뒷전인


세상과 맞짱 뜨고

목덜미라도 휘어잡아

흔들고 싶은 그런 날에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면

돼지 저금통이라도 일단

뜯어보시구려


돼지 한 마리에서

단 한 근 살만 발라낼 수 있다는

천 겹의 마블링이

연분홍 살코기에 콕 박힌

돼지 뒷덜미살을 한번

뜯어보시구려


깻잎 한 장 손바닥에 올려

마이너스통장은 마늘과 함께

사업한다고 날려버린

세월은 땡초로 삼고

바닥에서 설설 기는 주식까지

막장에 푹 찍어


얼음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센 불에 막 구워 낸

항정살 한 점과

인생의 쓴맛 단맛까지

모조리 한데 뭉쳐서

쌈 싸 먹어야지


가위질이 서툴러도

내어놓은 살만 구워낼 줄 안다면

입 크게 벌리고 걱정 없이

우울한 세상까지

씹어서 삼킬 수 있는

그런





pink pork #04, 2023, Mixed media, 320mmX34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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