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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생각 Dec 22. 2022

망년회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80.



지난주에는 영화제작사가 초대한 송년회부터
엊그제는 386 산악회 모임의 망년회까지

며칠을 잔뜩 알코올에

주말에도 새벽에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가만 휴일 아침인가?


내가 그때쯤 땅속으로 달려가는

두더지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 아내가

옷도 못 벗고 쓰러져 잠든 나를

두툼한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버렸어


나는 세파에 찌든 빨래들과 함께

가루세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심한 갈증으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면서

샤워를 시작했는데


강력한 모터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고

어지러움을 느끼던 나는

악을 쓰고

비명을 질렀어


입에서는

투명한 비눗방울과 함께

 해 동안 깊이 쌓아두었던

구겨진 생각들이

뿜어져 나오고


함께 토해 낸 조각난 시간들은

하늘로 날아가려고

서로 다투고 있었지만

나는 컴컴한 땅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지


, 진한 어둠이었어


벼르고 벼르던 아내의 분노가

드디어 나를 고문하고 있었던 거야

모터는 점점 더 세게 돌아가고

나의 흩어진 일상들은

하얗게 퇴색되어 가고 있는데


며칠을 부어라 마셔라

질펀한 술자리와 호탕한 웃음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흩어지는 거야

그동안 오고 간 대화들도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지


아내의 툴툴거림 속에서

이내 세탁기는 멈추었지만

나는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처럼 매달려졌고


나는 아찔한 공포감 속에서도

따뜻햇빛을 받으며 심호흡을 했지

그리고 가슴을 활짝 펴고

 취한 일상꺼내어

말리기 시작했어


마침내 나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와 바짝바짝 마르면서

심하게 비틀리고 있는데

멀리 한강 위로

새털 하나 날아가고 있는 거야


그래, 삶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시인 박용하가 은유적으로 말한

문구文句의 그 비유처럼

한번 흘러가버리면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저 강물을

나도 한번 수술하고 싶었어


저 무상의 햇살을

기다란 면발처럼 빨아들여

내 몸이 환해질 때까지

말갛게 헹궈져

허허로운 머릿속이 될 때까지


빈 잔은 채워두고 넘친 잔은 다시 비우듯

그래, 낼모레 미리 크릿스마스나 

준비해야겠다.





빨랫줄  210mmX135mm, Line Drawing on Paper(Croquis Book),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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