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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생각 Sep 25. 2022

조율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40.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다른 연주회와는 다른 설렘이 있다. 


공연장에 들어가서 아직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하지 않은 빈 무대를 바라보면 

어느새 내 귀에는 단원들의 Tuning(조율)하는 소리가 들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조바심을 내며 그들을 기다리게 되는데, 


한 명 두 명 단원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 오보에가 A음을 내고 

그 소리에 맞추어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색소폰 등의 

관악기들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악장이 바이올린을 들고 성큼성큼 무대 뒤에서 걸어 나와 

앞에 서서 소리를 내면 이에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의 

현악기들도 일제히 조율을 시작한다. 


장엄한 음악을 함께 연주하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다른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 

자신의 소리를 맞추어간다. 


관객 또한 그 순간부터 미세한 중이의 청각을 열어 무대 소리에 침잠沈潛되면 

처음엔 모든 악기의 소리가 다양하게 귀에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소리는 하나로 들리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의 조율은 완전한 시작을 위하여 

서로를 맞추어 나가는 아름다운 준비과정이다. 


오늘 아침에 수리산을 다녀왔다. 

상상 그 이상의 풍광에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수리산은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등산객이 별로 없었다. 


관모봉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낭아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뿐 

폭죽처럼 쏟아지던 가을 햇살이 자리를 내줄 기세는 아니었지만 

산길에는 떨어진 밤송이들이 이리저리 발에 차이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계곡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가 싱그럽다. 

산도 조율을 한다.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도토리나무와 청설모부터

계곡 물소리와 바위 등이 사람들과 어울릴 준비를 한다.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이런 한적한 산일수록 조율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산 중턱에 올라 숨을 고를 때쯤 널찍한 바위에 앉아서 

조용히 산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 멧새들이 무어라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 

풀벌레 소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이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에 

나의 콧노래까지 더해지면 장엄한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서로 나서지도 않고, 서로 외면하지도 않고, 서로 다투지도 않고,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어울리며 

그렇게 산을 만든다. 


저녁 바람이 살며시 인다. 

한주를 새로 시작하며, 내일은 무엇과 나를 조율할 것인가 고민해 본다.







조율 210mmX135mm, pencil on Paper(Croquis Book),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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