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알 것 같다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64.

by 어떤 생각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에

날이 저물고 있었다.

숲 위로 내려앉아 더 붉고 선명해지는 풍경


하나의 세상이

통째로

단풍 속에 묻히고 있었다.


나에게 몸을 맡기고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들

해묵은 상처를 비집고 나와 웅얼거리는 혼잣말들


깊고 아득한 고요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나무 위로 스쳐가는 바람,


저에게 속해 있지 않는 것들 다 내려놓고

가을 숲은

가만가만 어둠을 짚어가며 먼 길 떠날 시간이다.


고요가 고요를 밀어내는 저 크고 느릿한

시간의 피난처


간절한 기도와 기다림에 지쳐

먼저 길을 떠난 이들도

저렇듯 가볍게 어둠의 장막 뒤편으로 사라진 것일까.


죽은 자의 이름을 떠올릴 때

어째서 먼 허공을 바라보는지, 알 것 같았다.






그곳__북한산 석굴암 21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