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침묵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75.
전기난로 위에 주전자가 혼자 끓는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이 겨울의 침묵,
나직이 물 끓는 소리가
마냥 귀를 적신다.
작업실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문득,
춥고 어두운 길모퉁이
푸릇한 가로등 빛이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는 동안
텅 빈 하늘에서
한 줄 두 줄
안개꽃 같은 눈발이 날린다.
희끗희끗 내리는
일악장의 무반주 첼로 연주곡
이윽고 하늘을 뒤덮으며
펑펑 내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악보
거센 눈발 뒤로 아득하게
도시의 건물이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낮은 지붕들이
지워지고 있다.
조금씩 그리고 한꺼번에
눈발 420mmX135mm, Woodcut Print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