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단단하다
가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도토리와 밤송이가 두꺼운 옷을 벗고 갈색의 반들반들한 살결을 드러내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때일 것이다.
늘 걷던 산책길 어귀를 지나칠 때면, 여름 내내 풀벌레들이 숲 속 교향악단처럼 노래를 한다.
울음인지 노래인지, 떼창을 하며 강약 조절을 하고 리듬을 타는 듯한 소리는 마치 자기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 같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그 숲 속에서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번식을 위한 끝없는 순환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한 계절을 불태우며 나무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나무의 잎들을 더욱 춤추게 한다.
생활에 찌든 거친 신음, 표독스러운 음성,
간교한 뱀의 달콤한 소리가 아닌, 그냥 청량한 생수 같은 음악제를 여는 풀벌레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이라도 그 밑을 지날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 크게 내쉬고, 풀벌레 소리를 따라가지만 숲 속 요정들은 보이지 않는다.
천연음악소리를 저장하고. 추운 겨울을 견딜 자양분으로 삼는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
겨울 식량으로 비축하는 것처럼,
요즘 그곳을 지나칠 때 바닥에, 도토리가 모자를 벗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주워 옷깃으로 먼지를 닦아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간다.
도토리 한 알에 이렇게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위를 볼 여유가 없었나 보다.
도토리 줄을 세운다.
진짜 도토리 키재기다.
동그란 아이, 길쭉한 아이, 갸름한 타원형, 크기가 고만고만하다.
우리 일반 소시민의 삶의 크기 같이, 거기서 거기인 도토리는 화려하진 않아도, 단단해 보인다.
특별히 잘난 아이도 없다.
도토리를 바닥에 세워보니 동그란 아이는 안정적으로 서 있고, 모양이 길쭉한 아이는 서 있는 모양이 불안정하다. 긴 아이는 살짝만 건드려도 "픽"하고 쓰러진다.
위로만 보고 자란, 웃자란 아이다
반면 동그랗고 바닥이 편편한 아이는 바닥에 찰싹 붙은 듯이 안정적이다.
넉넉한 품을 키우며 앉은자리에서 엉덩이를 무겁게 하고 뿌리를 내리는 삶은 저절로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둥글어서 손안에 넣어도 부드럽고 따뜻하다. 넉넉한 품을 키우기 위해, 자연을 보면서 배우고, 성찰하면서 이 가을이 더 따뜻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