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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트리 Nov 30. 2021

연둣빛 압화



냉동실이 비었다. 늘 놓여 있던 커다란 비닐봉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래 칸 가득 차지한 채 냉동실을 비좁게 했던 검정 꾸러미는 이제 그 자리에 없다. 가슴 허물어뜨리며 쏴아 밀려나가는 썰물. 이 느낌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꾸러미가 냉동실에 들어있을 때 나는 정작 그것에 눈길조차 준 적 없다. 비로소 나는 비닐봉지의 부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급작스런 발진이었다. 중앙선 안쪽으로 달려오는 차를 피하려 급히 핸들을 꺾은 순간, 자동차는 지그재그 튕겨져 절벽을 들이받았다. 나는 암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톡, 톡, 토독…, 차창 부딪는 희미한 소리에 어렴풋이 눈을 떴다. 그리고 꿈결처럼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노루였다. 노루는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더니 이내 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겅중겅중 멀어지는 꽁무니를 어쩔 줄 모른 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하늘 맑게 떠 있는 저 눈동자를 잠시만 더 붙들 수 있다면. 놀람과 진한 아쉬움이 씨줄날줄로 교차하며 온몸의 신경을 휘감았다. 간신히 안전벨트를 풀고 빠져나온 뒤에야 눈물이 흘러내렸다. 갈라진 목젖에서 우러나는 아리고 달큰한 미각. 처음으로 음미한 눈물의 맛이었다. 

아침 일찍 부산스럽게 나선 길. 그날은 할머니 기일이었다. 차에 들이받힌 절벽이 아찔한 계곡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로 남았다. 몇 걸음만 더 나갔어도 계곡에 처박혔을 차는 부러진 나무들에 둘러싸인 채 찌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은 살아남은 몫의 훈장 같은 거였다. 안전벨트에 눌려 검붉게 벗겨진 흔적들이 남았을 뿐 나는 꽤 멀쩡하게 교통사고를 치러냈다. 그래, 이만하면 자축할만해! 중얼거렸지만 여전히 후들거리는 마음만은 쉽사리 가라앉힐 수 없었다.

한참이나 주저앉았을 때 초점 없는 시야에 연둣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옅게 덧칠해 나가는 길가의 쑥들. 갓 돋아난 잎들은 잔바람에도 파르르 손을 흔들었다. 풍경 너머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장면들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흐르다 멈춰버린 시간이 피딱지처럼 강렬한 말줄임표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할머니는 봄마다 삶은 쑥을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 가득 채워 나에게 보내주셨다. 햇쑥을 뜯어 삶은 뒤 아기 주먹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경단을 빚는 일. 그것은 할머니의 봄맞이 의식과도 같았다. 힘드니 그만 하시라고 전화 드리면, “늙은 몸 산보 삼아…”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믿었다. 아니, 진심이든 아니든 그다지 문제될 건 없다고 여겼다. 들녘에서 쑥 뜯는 일이 할머니 건강에 도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내심으론 알고 있었다. 단지 손녀에게 쑥을 주고 싶었던 할머니 마음을. 손녀는 당신이 부쳐준 쑥 부침개를 아주 맛깔나게 먹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나는 입이 짧은 아이였다. 무엇을 먹어도 탐스럽게 먹는 법이 없었다. 늘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오랜 고민 끝에 엄마는 할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외가댁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일찍부터 파란색 대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어서 오렴, 내 강아지! 나를 끌어안는 앞치마에서 바스락거리는 냄새가 났다. 훅, 얼굴에 감기는 치마폭의 햇살. 할머니와 조건부 동거의 시작이었다. 

단출하고 언제나 정갈했던 할머니 방. 잘 접힌 이부자리 아래 낮은 장롱이 있었고, 구석자리에는 잡동사니 물건들이 정리돼 있었다. 얘야, 갖고 놀 게 없어서 심심하겠구나. 할머니는 한지장판에 흘린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겸연쩍게 웃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의외로 많은 놀이를 찾아냈다. 매끄러운 마루에 옷 깔고 앉아 스케이트 타기, 반짇고리의 옷감 조각들 맞춰보기, 반닫이 열어 물건 탐색하기. 모두가 왜 손때 묻고 하나같이 반들거릴까 문득 치미는 질문을 꼬옥 쥐고서.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된장찌개와 자반고등어 구이,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 옥돔으로 끓인 죽과 미역국, 고사리와 숙주나물 무침, 풋냄새 강한 생채소들. 달짝지근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그 음식들은 나에게 버겁기만 했다. 나는 점점 더 음식에 흥미를 잃어갔다. 간이 약한 채소 무침들은 싱거웠고 생채소는 먹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된장찌개는 냄새가 강하고 텁텁했으며, 생선죽에 들어 있는 잔가시들은 너무나 성가신 존재였다. 자반고등어가 숟가락에 아무리 놓여도 비린 맛과 친해지긴 어려웠다. 급기야 미끌한 돼지고기 비계를 다 게워낸 뒤로는, 할머니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줌 남은 식욕까지 모조리 잃고 말았다.


아마 이틀쯤 뒤였던 것 같다. 코를 자극하는 기름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이끌린 것은. 할머닌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다가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가 먹고 싶은 게 생겼구나” 

그토록 고소한 끌림이 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밥상에 놓인 푸르죽죽하고 넙데데한 쑥 부침개는 군데군데 실오라기 박힌 잔디방석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씩 뜯어 꿀을 발라 먹기 시작했다. 마치 밀린 숙제 해치우듯. 다시는 숙제를 밀리지 않겠다는 듯. 

입 안 가득 맴도는 달콤한 맛. 그 달콤함은 꿀이 아니라 나를 안아 올린 웃음 때문이었다. 환하게 퍼지는 할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맛있게 먹어야만 한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까마득히 깊은 곳으로부터 불쑥 솟구치는, 설명하기 어려운 책임감에 충만해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명함이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 할머니의 웃음, 그것을 지키겠다는 분명한 책임감이 밍밍하기만 한 잔디방석을 과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끝내 말씀드리지 못했다. 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동실이 비고 나서야 보인 할머니의 부재. 멀미 같은 환지통이 밀려왔다. 나는 비어 있는 냉동실을 지나 어린 쑥들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참을 수 없는 허전함에 빈자리를 직접 채워보리라 뛰쳐나온 마음. 한나절 내내 쑥잎을 뜯었지만, 삶고 보니 그 많은 쑥잎 더미는 겨우 작은 경단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울컥, 낯익은 무릎 부종이 부풀어 올라 눈앞에서 터져 흘렀다. 할머닌 아픈 무릎을 끌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우듬지와 가시넝쿨을 헤집고 다니셨던 걸까. 손녀가 자라나 결혼하고 엄마가 된 이후까지도 왜 멈추지 않으셨을까. 

어쩌면 당신은 기나긴 세월을 의식조차 못한 채 봄마다 쑥을 뜯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숨 쉬듯 익숙해져버린 사랑이었다. 어느날 문득 거울 속에서나 발견하는 속눈썹 뿌리의 점처럼 존재의 살갗에서 도무지 떼어지지 않았던. 익숙함 속에 무심히 들어 있던 나의 흔적들이 아프다고 말한다. 늑골께 압착된 추억, 빛바랜 압화를 가리켜 ‘아파’라고 발음하듯이.


비로소 부재 너머 할머니가 느껴졌다. 그날 거기, 할머니가 있었다. 찌그러진 자동차와 또르륵 청명한 노루 눈동자, 길가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보았던 허공에도. 

길을 걷다가 낯선 어귀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말끔히 털어내고 싶었던 세상의 앙금들로부터 혼자 뒷걸음질 칠 때, 당신이라는 그림자는 모든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까닭 모를 절벽에 부딪칠 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던 것. 그냥 그 자리에서 말없이 품어주는 봄볕처럼,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사랑이 내 앞의 새로운 길을 내고 주저앉은 내 손을 잡아 주었던 거다.

추억의 갈피에 접혀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던 압화. 가슴 속 압화를 꺼내 나비처럼 날려 보낸다. 날갯짓 따라 흩날리는 꽃씨들. 없는 당신이 흩어진다. 흩어져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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