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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는 쥐

반기술주의는 옳은가

존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반기술 혁명>에 대한 서평

by 생각하는 쥐

서문 1 :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존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반기술 혁명>은 기술사회의 종식을 목적으로 한 반기술 혁명 지침서이다. 우선 책의 1장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 통제 대상이 될 수 없다”와 2장 “왜 기술 체제는 스스로 무너질 것인가”에서는 반기술주의의 배경과 타당성을 논한다. 그리고 3장 “세상을 바꾸는 방법 : 피해야 할 실수”와 4장 “반기술 운동을 위한 전략적 가이드라인”에서는 반기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이념과 실천법을 하나로 묶은 ‘혁명 교과서’다.


서문 2 : 이 글은 어떤 글인가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할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 “현대 기술문명은 반드시 몰락할 것인가?” 둘째, “기술문명이 반드시 몰락한다고 가정한다면, 기술문명을 파괴해야 하는가?” 논의 이유는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가장 큰 의문이 바로 이 두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본문 1 : 현대 기술문명은 반드시 몰락하는가

카진스키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장기적 이익을 도외시하고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기증식 체제가 생존과 증식에서 유리하다. 따라서 자연선택 과정을 거친 자기증식 체제는 즉각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또 활동범위가 넓은 자기증식 체제가 생존과 증식에서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선택 과정을 거친 자기증식 체제는 이동과 통신기술을 빠르게 발달시키는 체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도 이상으로 커진 자기증식 체제는 주변 환경을 파괴해 몰락한다.” 그는 현대 기술문명이 이 과정에 있으며 끝내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직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국가를 위시한 여러 인간 집단들은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에 천착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구온난화와 핵전쟁이다.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도 국가들이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모두가 보았다. 또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 역시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에 더 집중해서 살아간다. 이동통신기술의 발달 역시 마찬가지다. 이동통신기술이 발달한 체제는 더 중앙집권화된 체제를 꾸릴 수 있고 더 많은 지역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 제국주의 열강은 우월한 이동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혔고, 가장 우월한 자기증식체제로 군림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의 적자는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고 이동통신기술이 발달한 자기증식 체제다.”라는 명제는 진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이러한 자기증식 체제는 필연적으로 파국을 맞이할까? 카진스키는 한정된 자원을 미래에 대한 고려 없이 점점 빠르게 소모하는 행위가 파국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실제로 지구는 현재 심각한 환경파괴 문제를 겪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멈출 줄 모른다. 그러나 “자기증식 체제는 필연적으로 파멸한다.”라는 명제는 주변 환경의 자원이 유한할 때만 해당된다. 예를 들어 과거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은 섬의 환경을 광범위하게 파괴해 불모지로 만들었고 그 때문에 멸망했다. 그러나 지구 전체로 보았을 때 인류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즉 파괴 속도가 자원의 총량에 비해 미미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지구에 있는 자원이 전부라면 인류 문명은 파멸한다. 그러나 다른 행성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새로운 자원을 확보할 수 없을 때까지 버틸 수 있다.”


본문 2 : 기술문명이 반드시 몰락한다고 가정한다면, 기술문명을 파괴해야 하는가

‘기술문명이 반드시 파멸한다.’‘라고 가정했을 때, 저자는 ‘파멸이 확실한 현대 기술문명’을 한날한시에 먼저 파괴하여 수렵채집민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문명의 파국이 예견된다고 해서 기술문명을 버리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은 두 가지 전제를 함축하는데, 첫째는 “인류는 존속해야 한다.”이고 둘째는 “인류는 기술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수렵채집민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낫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전제들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우선 지구 역사에서 수많은 종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류가 반드시 존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며 수렵채집민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인류에게 ‘좋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물론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 맞추어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선택의 주체가 야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연선택의 주체는 기술사회이며 인류는 다시 여기에 맞추어 진화할 것이다. 즉 저자는 ‘인류 존속의 당위성’과 ‘인류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명확한 이유 없이 섣부르게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결론 : 아직은 많이 부족한 반기술주의

본문에서는 ‘기술문명이 반드시 파멸한다.’ , ‘따라서 기술문명을 먼저 파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그 주된 근거는 저자가 제시한 이유 및 근거의 부족함이었다. 따라서 “기술문명이 반드시 파멸하며 그 이전에 기술문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카진스키의 주장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게 기술과 그 기술로 만들어진 문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였으므로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 관련 도서를 더 탐독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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