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엔데의 <모모>를 읽고
지난 몇 달간 나는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겠답시고 무진 노력했었다. <대학생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 열심히 따라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품이 많이 든다. 쓰기 전에 생각하고, 쓰면서 생각하고, 쓰고 난 후에도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은 논리적인 글쓰기가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을 하릴없이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읽고 나서 쓰잘데기없는 글이라고 혹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교훈을 주거나, 치밀한 논증으로 설득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다. 이 글은 느끼는 글이다. 내 느낌을 옮기는 것이 아닌, 쓴다는 행위 자체에서 느낌을 얻기 위한 글이다. 그렇다. 느낌과 글쓰기는 동시에 일어난다.
<모모>를 처음 만난 건 개학 하루 전 날 이모 댁에 들렀을 때였다. 서가엔 많이 펼쳐 보지 않은 게 분명한 <모모>가 꽂혀 있었다. 오래전에 들렀을 때도 이 책이 있었던 걸로 봐서는 최소한 근 10에서 20년간 꽂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앞 몇 장이 꽤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이 책의 일부분을 발췌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학교로 돌아와 <모모>를 빌렸다. 학교 도서관의 <모모>는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세 권 다 너덜거리다 못해 뜯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투명 테이트를 덕지덕지 발라 놓지 않았더라면 수백 장의 종이로 흩어졌을 것이다.
<모모>의 주요 주제는 시간이다. 시간을 훔치려는 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려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렇게 아낀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바쁠수록 시간은 점점 사라져 간다. 모모는 그런 세상 속 시간 도둑들에 대항하는 모모와 친구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사실 아동용 소설이라 좀 유치한 감이 없지않다. 같이 읽은 <추락>이 인생사의 쓴맛과 매운맛을 다 담은 소설이라면 <모모>는 어린이를 위한 순한 맛 카레다. 그래서 절반쯤 읽다 그만두었다.
그러나 <모모>는 분명히 읽을 만한 책이다.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 역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쫓기며 산다고 생각한다. 종종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하고 탄식할 때가 많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도 항상 이루지 못하는 일이 많다. 왜 시간이 부족한 걸까?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내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시간이 향기를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멈춰 서서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나는 더 느리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