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씨, 해명 좀 해 주세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믿었다. 그는 현상으로부터 개념을 끌어내는(이를 귀납추론이라 한다)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더 높은 앎'의 그림자를 엿보았고, 결국 완벽한 진리의 세상인 이데아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가 이데아의 저급한 모방이라는 스승의 주장을 의심했다. 그는 이데아론에 대해 두 가지 반론을 제기했는데, 첫 번째는 '제 3인간 논변'이고 두 번째는 '우물을 피해 걷는 이데아론자의 모순'이다. 사실 두 번째 반론은 엄밀한 반박이라기보다 이데아론자들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향한 조롱이다. 이데아론자들이 주구장창 '현실은 이데아의 저급한 모방이므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라고 떠들면서 눈으로 본 우물이나 절벽은 요리조리 피해 가니, 이런 우스운 꼴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 지적에 이데아론자들은 '관찰로 얻은 지식은 어디까지나 완전히 참된 지식이 아닐 뿐,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반박하리라. 이를 두고 "관찰로 얻은 지식은 정확히 얼마만큼 참된가?"라는 새 논제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다루지 않겠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 반론의 핵심은 첫 번째 반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반론, '제 3인간 논변'은 무슨 내용일까?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세 가지 핵심 전제를 갖는다. 첫 번째 전제는 여럿에 걸친 하나(One Over Many) 원리이고 두 번째 전제는 이데아의 분리성(separation), 세 번째 전제는 이데아의 자기 술어화(Self-Predication)다. 그리고 네 번째 전제는 "최종적인 설명 원리"다. 여럿에 걸친 하나의 원리는 "여러 개의 개별 사물이 공통 속성을 가질 때 이 공통 속성은 하나의 이데아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데아의 분리성은 "이데아는 개별 사물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이데아의 자기 술어화는 "이데아 자신도 그 이데아가 대표하는 속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설명 원리"는 "이데아는 더 이상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통 속성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원형이다."는 뜻이다.
이제 전제들이 어떻게 모순을 일으키는지 보자. 첫 번째 전제로 어떤 사물들의 공통 속성을 설명하는 이데아가 있으면 세 번째 전제로 이데아 자신도 그 속성을 띠므로 공통 속성을 가진 사물 집합에 속한다. 그리고 첫 번째 전제로 이 사물 집합을 설명할 이데아가 생긴다. 이렇게 한 속성에 대한 이데아가 계속 생겨난다면 이는 "최종적인 설명 원리"와 모순된다. 이를 무한 퇴행의 문제라 부르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이데아론은 모순이다.
이렇게 '제 3인간 논변'은 이데아론의 전제들이 작동하며 일으키는 모순을 지적한다. 그런데 두 번째 전제인 '이데아의 분리성'에 따르면 이데아는 개별 사물과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개별 사물들의 집합에 넣을 수 없지 않을까? 실제로 플라톤 학파의 일부 학자들(특히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이데아의 위계질서를 강조하거나, 이데아에 대한 '여럿에 걸친 하나' 원리의 적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 논변에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데아는 분명 개별 사물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개별 사물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참여(participation)'라 부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데아로 개별 사물을 설명할 수 없다. 이데아가 '분리'되어 존재하면서 '참여'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모순이다. 즉 '참여'한다면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된다면 '참여'할 수 없다. 결국 첫 번째 전제와 두 번째 전제는 시작부터 모순이었다. 설사 임시방편으로 두 번째 전제를 버린들, 무한 퇴행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로써 이데아론은 앞에도 모순, 뒤에도 모순이 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론은 유효한 듯 보인다. 만약 이 반론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이데아론을 구제할 길은 없다. 실제로 오늘날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듯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사람들의 인식 체계 저편에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아직 플라톤이, 그리고 다른 플라톤주의자들이 이 반론에 대해 뭐라고 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이데아론은 여기서 끝장나 시대의 유물로 사라지진 않았다. 대체 이데아론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참고문헌
https://blog.naver.com/kangalth1991/223934233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