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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는 쥐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박제윤의『철학하는 과학 과학하는 철학 1 과학철학의 시작』을 읽고

by 생각하는 쥐

이전 글로 후기를 남긴 『철학하는 과학 과학하는 철학 1 과학철학의 시작』끝부분에는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라는 장이 있다.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담긴 장이다. 나름대로 답을 적어 보았다. 각자 자신의 답과 비교해보시라.


※ 이 책을 잘 읽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Q1. 글쓴이는 철학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였는지 열거해보자.

A1. 철학은 "앎은 무엇이며 기존 지식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어떻게 추론하는가?"라는 질문과 "어떻게 행동3.해야 옳은가?"라는 두 질문으로 나뉜다. 전자는 인식론과 논리학으로, 후자는 윤리학으로 명명된다. 인식론은 "지식을 어떻게 얻었는가?(인식 방법)",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인식 범위와 한계)", "지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지식의 자격)"을 논하는 분과다. 과학철학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조건은 무엇인가?", "합리적인 과학 설명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추가된다. 논리학은 학문을 탐구하며 어떤 추론이 올바른 추론이고 어떤 추론이 오류인지를 밝히는 분과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은 어떤 도덕률이 옳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논하는 분과다. 종합하자면 철학은 정립된 지식을 어떻게 얻었고, 무엇이 옳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또 지식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고찰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어떤 지식이더라도 철학이 검토하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는 지식, 정당하지 않은 지식이 된다. 번쩍거리는 첨단 장비나 연구진의 빛나는 경력에 혹해 철학이 검증하지 않았는데도 '진리'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Q2. 글쓴이는 그러한 규정 중 무엇을 가장 강조하였는가?

A2. "지식을 어떻게 얻었는가", "지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어떤 추론이 올바른 추론인가" 이 세 질문을 가장 강조한다. 분야로 따지면 인식론과 논리학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라는 장소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을 설명하고 비판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추론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고 올바른 연역추론 방식이 정해져 있음을 역설한다. 이 모두를 통틀어 가장 강조한 규정은 바로 "철학의 기본 자세란 아주 당연해 보이는 사실조차 의문을 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Q3. 플라톤은 진리를 밝히는 대표적 학문을 어느 분야로 보았는가?

A3.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감각 경험 없이 이성만으로 구성된 순수 연역 학문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감각으로 알아챈 '현상'보다 이성으로 알아챈 '개념'이 더 완전한 지식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오직 이성으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Q4. 플라톤은, 우리가 그러한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이유를 어떻게 보았는가?

A4. 바로 이데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 모습이 다른 사물들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출생 전 완벽한 개념들로 이루어진 세계인 '이데아'에 머물렀던 기억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을 갈고닦아 이데아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좋은 방편 중 하나가 바로 기하학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아카데미 앞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에 들어서지 말라."고 써놓은 것이다.


Q5.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연구 방법론으로 무엇을 이야기하였는가?

A5. 귀납추론과 연역추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부정하였으며 진리는 다른 세상이 아니라 사물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각 경험(정확히는 분류)을 통해 사물의 본성을 개념으로 만드는 '귀납 추론'과 귀납추론으로 만든 이론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연역추론'을 학문의 연구 방법론으로 꼽았다.


Q6.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가?

A6. 앞서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성은 사물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질료(형상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이 되는 재료) 속에 형상이 들어 있다."는 말로 이 주장을 요약했다. 또 그는 현상은 사물의 본성이 가진 '목적인'이 사물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자연은 어느 것도 쓸모없이(목적 없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를 목적론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을 분류하고 관찰하여 사물의 본성(곧 목적)을 알아챌 수 있으며 이것이 참된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추론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개별 사례를 모은다 해도 '모든' 사례를 모을 수 없으므로 이는 결코 일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 흰 백조 99마리를 보고 '백조는 모두 희다'라고 말한들 나중에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나면 그 이론은 무너진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 운동을 보고 F→mv라는 식을 떠올렸지만 이는 뉴턴에 의해 틀린 식으로 판명났다. F→av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역시 기계론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적지 않겠다.


※ 함께 독서한 사람들과 토론해보자.


Q7. 플라톤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A7. 플라톤은 그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 일화를 통해 앎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상 속 사물은 가장 낮은 수준의 앎이며 실제 사물로부터 경험하여 얻는 앎이 그 다음이다.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산술이나 기하학 지식이 세 번째이며 가장 높은 앎은 이데아이다. 즉 그는 '포괄적이고 변치 않을수록' 더 높은 수준의 앎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앎에 서열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묻겠다. 실제 사과보다 '사과'라는 개념이 더 우월한가? 분명 실제 사과는 조금씩 다르지만 '사과' 개념은 이 모두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인간 인식에 기초한 분류이지 실제로 '사과'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할 순 없다. 개별 사과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또한 개념은 실제에 대한 이해를 도울 때만 의미가 있다. 철학이 과학을 도울 때 빛을 발하고 그 혼자만으로는 '어리석은 철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개념은 혼자서 빛을 발할 수 없다. 현실과 단절된 개념은 죽은 지식이 되고 만다. 내 생각에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비판한 것처럼 인간 인식(개념)이 절대적인 척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간 인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도 비판하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했지만 그 역시 개념을 지나치게 중시했다. 그는 모든 사물은 본질을 품고 있으며 본질에 담긴 목적인이 현상을 추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본질은 인간 인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며 개념은 현상 이해를 도울 뿐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은 이데아가 존재하는 위치만 바꾼 이데아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보여주지 못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히 정의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말로 인간의 본질을 정의하였는데, 이 본질은 너무 모호해서 올바른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 즉 질료형상론은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집착한 이데아, 본질이란 개념은 인간 인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둘은 인간 이성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개념이 현상을 지배한다고 오해한 것 같다.


Q8.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A8. 이 책은 글쓴이의 생각은 거의 없고 철학 지식을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 3인간 논변' 설명이 빈약하여 이해하는 데 애먹었다. 후에 개정판을 낸다면 그 부분을 보충해야 되겠다.


Q9. 이 책을 읽은 후, 각자의 의문이나 생각을 토론해보자.

A9. 혼자 읽어서 토론할 사람이 없다. 내 의문은 위에 모두 기술하였으니 다른 의문을 가진 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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