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읽는 쥐

그분은 번개처럼 오시리다

Sanjoy Mahajan,《Newton의 운동법칙》을 읽고

by 생각하는 쥐

나는 뉴턴이 싫었다. 정확히는 그가 고안한 뉴턴 1, 2, 3법칙으로 대표되는 운동 이론이 싫었다. 고등학교 1학년 물리 I 수업에서 처음 접한 뉴턴 역학은 난해함 그 자체였다. 나는 개념 사이에서 길을 잃었으며,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작정 공식을 외워 문제를 풀려 했다. 아주 간단한 문제는 풀 수 있었지만 조금만 복잡한 문제가 주어지면 손을 못 댔다. 인터넷 강의도 들어 보고 교과서와 자습서도 열심히 읽어 보았지만 얄팍한 이해는 복잡한 문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전히 뉴턴 역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뉴턴을 미워했다. 그가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안겨준 것 같았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TAyMDZfMTYx%2FMDAxNjEyNTQyNDU3OTE3.zW1fJACrZC2PJV1MGNU-6_1gECWTKDeKgbrfS9bhMckg.IMFs3nThuZbmywTXd6CBP5b13mQw8VMo2V3gn2XkJisg.JPEG.loltea%2FFB%25A3%25DFIMG%25A3%25DF1612502869876.jpg&type=sc960_832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격하게 공감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도, 내게 뉴턴 역학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뉴턴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선 일반물리학은 나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뉴턴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군대만 전역하면 너와는 영영 안녕이야. 이렇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고 뉴턴과 다시 손을 잡아 보려 했다. 2024년 초, 군을 전역했다. 복학 전 짧은 방학 동안《과학을 쿠키처럼》,《이런 물리라면 포기하지 않을 텐데》등 뉴턴 역학을 소개하는 물리 교양서를 읽으면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뉴턴과 멀리 있었다. 나는 뉴턴이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처럼 그에게 끊임없이 끌려가지만 결코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2024년 겨울, 이변이 일어났다. 지구가 태양으로 점차 끌려들어가다 일대 충돌을 일으켰다. 그 계기가 바로《Newton의 운동법칙》이었다.


책은 정말 우연히 내게 다가왔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작고 얇은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뉴턴을 공전하길 멈추고 그에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를 마주보게 되었다. 나를 보는 뉴턴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책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힘은 상호작용이다."

-Newton 제 3법칙-

아름다운 설명이다. 간결한 설명이다. 뉴턴 제 3법칙의 본질을 그 어떤 문장보다도 간결하고 명확히 짚었다. 나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최초로 뉴턴과 나 사이에 언어가 있음을 느꼈다. 그간 교과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느낄 수 없었던 언어를 느꼈다.


뉴턴 역학은 단순히 공식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을 깨부순 새로운 세계관이고 사물의 운동원리에 대한 인류 최초의 명확한 설명이다. 따라서 뉴턴 역학은 수학 공식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 공식은 뉴턴 역학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뉴턴 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뉴턴과 나 사이에 성립할 수 있는 언어가. 그 언어가 이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왜 1, 2법칙에 앞서 3법칙을 가장 먼저 짚었을까? 바로 3법칙이 다른 두 법칙보다 우선하는 힘의 본질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은 항상 상호작용으로 존재한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힘은 없다. 그러나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작용-반작용 논리로 3법칙을 설명하면 마치 '두 힘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이는 많은 학생들을 혼란 속에 몰아넣는 원흉이다. 저자는 이 오해를 저격하기 위해 첫 장, 첫 문단에 저 짧은 문구를 삽입했다.


3법칙으로 시작한 뉴턴의 세계는 장이 이어질수록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힘의 종류와 분류법, 뉴턴의 중력법칙, 중요한 힘과 피해야 할 힘, 자유물체도 그리는 법, 뉴턴 1법칙과 그에 따른 좌표계 분류법, 뉴턴 2법칙과 그 본질 및 적용, 이름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장력과 압력, 뉴턴 운동법칙의 한계와 아인슈타인의 해법까지. 쏟아지는 지식의 향연은 버겁지만 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다. 이제 우리 사이에 공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뉴턴의 언어로 말하고, 뉴턴은 나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Sanjoy Mahajan은 이 책 전체에 걸쳐 Newton 운동법칙을 침식하는 오해들과 결연히 맞서 싸운다. 그 오해들 중 단연 으뜸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 강적이다. 저자는 겁을 단단히 주고 나를 전장으로 이끌었지만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물리쳤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망령이 되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지 니체의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


괴물은 좀 심한가? 엄밀히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건 아니다. 무엇이 맞고 틀리느냐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집필한 토머스 쿤은 이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책상 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쳐 놓고 손엔 4색 연필을 쥔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 그때 내가 본 광경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갑자기 머릿속의 파편들이 스스로 새롭게 짜맞추어지며 탁탁 들어맞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순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단한 물리학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내가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제야 난 그가 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했다. 이전엔 지독한 착오인 것 같았던 진술들이 이젠 아무리 나쁘게 본들 강력하고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전통 하에서의 아까운 실수로 비추어졌다.[1][2]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너무 이르다. 다음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으리라. 약속한다. 다시 뉴턴으로 돌아가자. 앞서 설명했듯이 Sanjoy Mahajan은 책에서 뉴턴 운동법칙을 재구성하고, 거대한 오해와 맞서 싸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 유형을 끌어옴으로써 Newton 운동법칙이 실제 문제에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익숙한 경사로 위 물체 문제부터 일정한 속도로 달리거나 가속하는 자전거, 탁자에 튕기는 공,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 우주 엘리베이터와 원형 도로를 도는 자동차까지. 뉴턴의 1, 2, 3법칙을 손에 쥔 채 그가 제시하는 수많은 문제의 파도를 헤치다 보면 어느새 Newton 운동법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참으로 뿌듯한 발견이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책에도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번역서에만 존재하는 단점이다. 바로 지나치게 허술한 번역과 범람하는 오탈자다. 역자 최준곤 교수님께 이렇게 좋은 책을 한국에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비문들과 셀 수 없는 오탈자가 난무하는 번역은 실망스럽다. 덕분에 원서와 대조하면서 읽어야 했고, 원서엔 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로맨스는 끝났다. 우리는 긴 헤어짐 끝에 다시 만났고, 이제 단절이 아닌 졸업이란 이름으로 헤어지려 한다. 나는 새로운 물리학의 세계로 뛰어들 예정이다. 뉴턴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한 Sanjoy Mahajan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3149_2334_2430.jpg 내가 좋아하는 Isacc 토스트. Isacc은 성경 구절에서 따 온 이름이지만 나는 간판을 볼 때마다 뉴턴을 떠올린다.


참고문헌

[1] Thomas Kuhn, "What Are Scientific Revolutions?", The Probablistic Revolution, Volume I: Ideas in History, eds. Lorenz Kruger, Lorraine, J. Daston, and Michael Heidelberger (Cambridge, MA: MIT Press, 1987), excerpt from pp. 7-22: http://www.units.miamioh.edu/technologyandhumanities/kuhn.htm


[2]나무위키, 2025, “토머스 쿤”, https://namu.wiki/w/%ED%86%A0%EB%A8%B8%EC%8A%A4%20%EC%BF%A4#s-2.3, 접속일: 2025년 10월 5일.


Sanjoy Mahajan, 최준곤 역, (2022), 『뉴턴의 운동법칙』, 학산미디어.

Sanjoy Mahajan, (2020), 『A Student's Guide to Newton's Laws of Mo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