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맥코이,『대전환 : 2030 미국 몰락 시나리오』를 읽고
2020년대 내내 계속된 물가 상승, 실업률 증가 및 실질 임금의 하락 속에서 정치적,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며 국민 분열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은 트럼프의 후계자는 환멸과 절망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터무니없는 미사여구로 소외된 백인 노동자 계층을 선동한다. 거대한 성조기로 뒤덮인 신내시티, 클리블랜드, 톨레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대통령은 감히 "위대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박탈한 국제통화기금의 "한물간 유럽인들"을 규탄한다. 대통령의 공격이 적으로 규정된 여러 인종 집단을 거쳐 "우리의 기술을 훔치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아시아로 빼돌린 교활한 중국인"에서 절정에 이르자 군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USA! USA!"를 목이 터져라 외친다. 그는 미국의 권위를 존중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군사적 응징이나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이 갈가리 찢긴 가운데 세계는 미국의 세기가 조용히 저무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345-346쪽, '경제 하락 : 2030년 시나리오'-
내가 살아온 내내 미국은 전쟁 중이었다.
-7쪽, '미국의 힘과 나의 삶'-
『대전환 : 2030 미국 몰락 시나리오』는 위스콘신대학 역사학자 앨프리드 맥코이의 저서다. 그의 첫 저서『동남아시아 헤로인의 정치학』은 CIA의 출판 금지 시도로 유명해졌다. 검열 문제가 불거지면서 책은 출판됐지만, 이후 그는 상당 기간 CIA의 사찰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경험이 그가 '미국의 감시체제'를 비롯한 미 제국 전반을 연구하는 동기가 됐다. 이후 그는 미 제국 연구에 오랜 기간 매달려 왔고, 2017년 그 결과를 집대성해 『대전환 : 2030 미국 몰락 시나리오』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 제국이 어떻게 부상했고 왜 쇠퇴할 것인지 대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책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1부, '미국제국의 이해' 첫 장에서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중요한 설명 도구로 활용할 할포드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소개한다. 매킨더는 20세기 초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가 세계섬을 이루며 세계섬의 심장지대(유라시아 중북부)를 장악한 세력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한 영국 지리학자이다.
미국은 지난 반 세기 동안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이었지만, '심장 지대'를 직접 장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 내내 36개국 400여곳에 세운 해외 군사기지, 그리고 수많은 동맹국들로 유라시아 포위망을 형성하여 심장 지대를 장악한 대륙 세력(소련,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함으로써 세계섬 전체를 통제했다. 저자는 미국이 이런 가공할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소수 동맹국들과 다수 종속국들로 이루어진 범지구 군사 네트워크 덕분이라고 보고 그 상세를 분석했다. 이 네트워크에서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비교적 대등한 서유럽 강국들을 대상으로는 동맹 대접을 해 주었지만 필리핀, 한국,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등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및 동아시아 약소국들에 있어서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쥐고 흔드는 편을 선호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종속국 지배층을 이용한 통제였다. 미국은 1954년 백악관에서 우리 편이면 '개자식들(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표현)'이라도 가리지 않고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후 민주주의나 인권을 완전히 무시한 외교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정책이란 미국 입맛에 맞는 친미 반공 인사들을 각국 지도층으로 옹립하는 '비밀공작'을 뜻했는데, 그 지도자들이 자국에서 끊임없는 부패, 학살, 탄압을 일삼으며 크나큰 비극을 초래했고, 이는 많은 나라 국민들이 뒷배인 미국에 악감정을 갖는 원인이 됐다. 당장 세계에서 손꼽는 이란의 반미감정만 봐도 미국이 옹립한 샤의 폭정이 그 주 원인이다. 아무튼 이 독재자들은 점차 미국에게도 반항하며 폭주하다 결국 끌려내려왔고, 다음에는 높은 수순으로 반미를 외치는 지도자가 들어섰다. 결국 한때 미국이 통제하던 수많은 종속국들은 원한을 품은 채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2부, '미국의 생존 전략'에서는 미국이 향후 세계패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했는지 탐구한다. 그 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감시와 천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이를 '트리플 캐노피'라고 부른다. 먼저 감시. NSA를 위시한 정보기관들이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전 세계 모든 통신을 감시하여 외교, 군사, 경제, 기술, 비밀공작, 종속국 지배층 통제 등에 쓸 정보를 수집한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정보수집이 '필수적인 안보'에 쓰인다고 강변하지만 실은 패권 유지를 위한 중요한 도구다. 2023년만 해도 미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이를 묻는 데 주력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윤석열 정부야말로 미국 '종속국 지배층 통제' 정책의 모범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음으로 천벌이다. 미국은 앞서 구축한 감시 체제로 24시간 지구 모든 곳을 내려다보다가 '죽일 놈'을 발견하면 곧바로 불벼락을 내려 저세상으로 보낸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이런 천벌을 내릴 수 있는 무인기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실제로 중동에서는 이 천벌을 맞고 황천길 간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사람들이 진짜 '죽일 놈'들이었는지는 완전히 별개 문제지만 말이다. "감시와 천벌" 전략의 핵심은 갈수록 쇠퇴하는 미국의 경제력을 정보력과 군사력으로 벌충한다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3부, '미국 쇠퇴의 역학'에서 저자는 앞서 설명한 '심장지대' 이론을 토대로 미 제국 쇠퇴를 주장한다. 미국은 서유럽과 동아시아에 마련한 두 축점을 기반으로 세계섬을 통제했는데, 지난 수십 년간 저지른 실책으로 통제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저자는 세계섬 통제력을 잃은 미국은 더 이상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할 수 없다고 진단내린다.
그럼 이제 미국 몰락은 확정되었는가. 이제 나는 미국 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한 돈을 다시 회수하면 되는가. 답은 '글쎄올시다'다. 왜냐하면 이 책만 읽고 결정내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책은 심장지대 이론과 미국의 초기 식민정책, 비밀공작, 감시체제, 고문, 무인무기, 오바마의 지정학 전략 일부, 마지막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다룬다. 하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내 머릿속을 채운 건 새로운 지식을 알았다는 뿌듯함도,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도 아닌 깊은 허탈감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조각이 절반쯤 빠진 퍼즐을 맞춘 듯한 느낌이었다. 중간에 10장, 아니 20장 정도 빠진 줄 알았다. 저자는 미국이란 나라의 그늘을 단편적으로 제시하고,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도 제시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각 장의 주제들은 서로 맞물려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마치 아귀가 맞지 않는 레고 블럭과 같았다. "왜 미국이 몰락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에 없었다. 왜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현 시대에 적용하는지, 미국의 식민정책, 비밀공작, 감시체제, 고문, 무인무기 개발 시도가 어떻게 미국의 몰락을 시사하는지, 최근 미국 지도자들의 정책이 미국 패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제시된 시나리오에 이르자 답답함이 배가 되었다. 미국이 망한단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에서 쫓겨나고,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미국의 영향력은 북미 대륙으로 쪼그라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없다. 왜, 무엇이, 어떻게 미국의 몰락을 시사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대체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분명 이 책의 저자는 유명한 역사학자라고 했는데. 왜 이런 책을 썼지? 내가 잘못 읽은 건가?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당혹스러움이 가시질 않았다. 이어 깊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사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책 표지의 홍보 문구를 볼 때부터 의심스럽긴 했다. 역사학자는 미래를 예측하길 꺼린다고 들었는데 지나치게 확정적으로 예측하는 태도도 미심쩍긴 했다. 이 책은 실패다. 잘못 골랐다. 내가 기대했던, 미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노 역사학자의 깊은 통찰은 이 책에 없다. 그래서 결론, "미국이 왜 몰락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 책은 그 답을 주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미국이 저지른 '나쁜 짓'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미국의 앞날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