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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게사코,『유곽 안내서』를 읽고

by 생각하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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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게사코의『유곽 안내서』는 137회 나오키상 수상작이자 게사코의 소설 중 유일한 한국어 번역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게사코의 다른 책도 찾아봤는데 딱 이 한 권만 번역됐더라. 출판년도가 2016년으로 이미 10년이나 지났는데 그간 다른 책이 한 권도 번역되지 않은 걸로 봐서는 앞으로도 게사코의 다른 소설이 번역출간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읽든가 해야지, 원.


『유곽 안내서』는 일본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곽을 배경으로 무명의 주인공이 유곽에 얽힌 여러 인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가쓰라기 실종 사건'의 전모를 밝혀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내가 지금껏 읽은 소설 중 이런 '사건 인터뷰 형식'을 띤 소설은 『유곽 안내서』가 처음인데, 상당히 신선하고 흥미롭다. 독자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사건의 흐름과 전모를 파악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마치 탐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몰입한다. 참고로 내가 요새 읽는 『고비키초의 복수』(역시 나오키상 수상작)도 이와 같은 구성을 띠고 있다.


가쓰라기는 일본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곽의 아주 유명한 요비다시 오이란(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명만 받는 오이란)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주인공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증언 속에서 생생하게 재구성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증언을 내놓고, 그중에는 교묘하게 거짓을 섞는 이도 있어 아주 주의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토록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오이란이, 어떻게 이 감옥 같은 요시와라에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었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소설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는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요시와라의 상세한 면모들이다. 누가 이곳에 주로 오는지, 오이란을 만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유녀의 등급은 어떻게 나뉘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등 아주 상세한 설명이 뒤따라 정말 요시와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독자는 요시와라의 마력에 홀려 주인공을 따라 점차 유곽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이런 장점들 덕에『유곽 안내서』를 정말 재미읽게 읽었다. 처음에『파선』같은 책을 찾아 도서관 일본 소설 서가를 헤메다가 우연히 『유곽 안내서』를 마주쳤는데, 그 후 홀딱 반해버렸다. 일본 에도시대 요시와라라는 흥미진진한 배경부터가 매력적이지만, 독특한 서술 방식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은 잘 쓴 소설에 목말라 있던 내 식도를 축여주었다. 그렇다면 요시와라는 대체 어떤 곳인가. 『고비키초의 복수』에서 요시와라와 연극마을은 악처라는 말이 나오는데, 악처란 국가가 허용한 필요악이 행해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매춘은 인류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구한 행위지만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 적어도 에도에서는 국가가 허용한 장소, '요시와라'에서만 매춘을 하도록 했다. 요시와라는 이를테면 '정부 공인 유흥구역'인 셈이다.


그렇다고 요시와라를 '사창가'로 취급하면 서운해할 등장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첫 번째로 나오는 히키테자야 기쿄야의 여주인 오노부부터 '요시와라와 사창가는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요시와라를 '꿈을 파는 곳'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단순히 돈을 주고 맺는 성관계 이상의 '연애'를 위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이 모든 게 언젠가는 깰 꿈'임을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유곽 안내서』를 읽으며 매춘의 타의성을 깊이 생각했다. 스스로 원해서 몸을 파는 사람은 없다. 설사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 한들, 이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지 정말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선 사람들이 매춘부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매우 좋지 않을뿐더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와 성관계를 갖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성병이나 폭행 위험도 항상 상존한다. 실제로 요시와라에 팔려 온 유녀들은 저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부모가 굶주림에 못 이겨 팔았거나, 빚을 졌거나, 죄인으로 붙잡혀 왔거나.


그러다 보니 그녀들은 꿈을 팔지만 그 꿈 뒤에는 항상 '어쩔 수 없음'이란 감정이 서려 있다. 어쩔 수 없이 웃고, 어쩔 수 없이 비위를 맞추고, 어쩔 수 없이 몸을 섞는다. 이는 유녀도 알고, 손님도 아는 바다. 하지만 유녀도, 손님도 때때로 이 사실을 잊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꿈이라고 생각하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침이 되면 꿈은 사라지고, 유녀와 손님 모두 차가운 현실로 돌아온다. 때때로 이 '어쩔 수 없음'에 저항하려는 유녀들도 있지만, 대부분 시스템의 '처벌'에 굴복하고 만다. 요시와라의 유녀들은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스러져간다. 유녀로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고작 십 대 중반부터 이십 대 중반 정도까지 십 년 정도다. 이 과정에서 병에 걸리거나 여러 불운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실제로 요시와라 유녀들의 기대 수명은 매우 짧았다고 한다. 그렇게 꿈을 팔던 자들이 영원히 꿈 속으로 사라지면, 새로이 태어난 자들이 같은 꿈을 팔기 위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읽으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지가 없는 삶이란 어떤 느낌일까. 나 역시 태생에 따라 한정된 선택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운신의 폭이 넓고 내가 직접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유곽 안내서』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태생과 함께 인생이 정해져버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그렇게 시키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삶을 마감해버린다. 이들 대다수에게 삶은 '죽지 못해 삶'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옴싹달싹할 수 없는 절구 속에서 태어나, 바깥으로 손을 뻗어보려 해도 절굿공이가 힘차게 내리찍는 곳에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삶을 개척할 수 있을까. 사실 모르겠다. 내가 요시와라의 유녀라면 어땠을까,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반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순응하는 삶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다른 수가 없어도...그저 순응만 하다가 스러지는 삶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이런 말이 위로가 될 리는 만무하지만, 다른 말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쓰라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녀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요시와라에 들어왔고, 끝내 그 목표를 달성한 뒤 요시와라에서 사라졌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그토록 큰 소동을 일으켰음에도 가쓰라기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심지어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기까지 하는데, 아마 그들 마음속에서 가쓰라기의 이런 행동이 매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 아닐까 싶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꼭 한 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인간의 삶이란 때로 기쁘면서도 슬프기 그지없어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참으로 오묘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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