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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는 쥐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의 <반기술 혁명>을 읽고

by 생각하는 쥐

서문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도덕책에서였다. 중심 내용 외 추가로 소개하는 이야기 중 하나로 그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내용인즉슨 ‘기술사회에 반대하여’ 기술자들에게 폭탄 테러를 가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세상엔 별 미친 사람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나는 그를 세상에 넘쳐나는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중 하나로 생각했고, 반기술주의란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저서 <반기술 혁명>의 1, 2장을 읽고 그가 주장하는 내용의 타당성에 대해 생각한 바를 적어보겠다.


본문

1장과 2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겠다. 1장,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 통제 대상이 될 수 없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백했다. 인간 사회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고, 어떤 변수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을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며 “이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저래서 저런 일이 벌어졌다.”라고 사후 추론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시간 그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가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즉 “인간 사회의 발전 방향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1장의 내용이었다. 2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단세포 생명체부터 인간들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기 증식 체제는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라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체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체제는 이동과 통신기술을 발전시켜 활동범위를 최대한 넓히려고 하며,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환경파괴가 일어나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주장은 한 번도 접한 적 없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기술 진보가 곧 선이라는 기술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기술 진보 과정에서 환경파괴가 일어나더라도, 그 또한 기술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진보가 아닌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나 스스로 그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1. 자기 증식 체제는 생물로서 대표된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파국을 향해 걷지는 않는다. 파국을 향해 걷는 자기 증식 체제와 그렇지 않은 자기 증식 체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국을 향해 걷는 자기 증식 체제와 그렇지 않은 자기 증식 체제의 차이는 개체수 조절이 되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어떤 자기 증식 체제가 이동 및 통신기술을 발전시키지 않더라도 그 개체수가 끊임없이 늘어나면 환경은 파괴된다. 예를 들어 어떤 종이 원래 서식지에서는 천적의 존재로 인해 개체수 조절이 되었지만, 외래종으로써 다른 지역에 들어가면 그 수가 끊임없이 증식하며 해당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 역시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질병, 다른 종의 포식, 같은 종의 살해, 굶주림 등으로 개체수 조절이 되어 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질서가 잡힌 거대공동체들이 출현하고, 의학기술과 식량재배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며 그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2. 기술 발전 속도가 환경 파괴 속도보다 빨라서, 기술 발전으로 환경 파괴를 벌충할 수는 없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환경 파괴 없이 발전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술은 현대 문명의 수준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일 것이고, 그 기술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환경 파괴로 인류 문명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3.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으나, 경험적 사실에 빗대어 보았을 때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과연 타당하다고 할 만한가?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저자의 주장이 ‘결코 확증이 불가능한 종류의 주장’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한 주장은 대부분 경험적 사실에 의거한 것이며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몇 가지 역사적 사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확실히 빈약하다고 할 만한 근거이며,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론

저자의 주장은 매우 흥미로우며 생각해 볼 만한 것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종의 장기적 생존을 대비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 종의 기술 수준을 퇴보시키거나 기술 자체를 제거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저자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기술을 배격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계속 기술개발을 하며 자기증식을 계속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 세대는 기술의 안락함 속에서 죽겠지만,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 혹은 다다다음 세대는 몰락에 직면할 것이며 어쩌면 인간 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저자의 주장은 제대로 논증되지 못했고, 완벽하게 논증될 수도 없지만 적어도 많은 연구자들이 여기에 납득할 만한 수준의 근거를 덧붙이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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