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슬랙에 메시지가 떴다.
"이번 주 가을 신상 론칭 준비해주세요~"
아, 맞다. 데님 자켓이랑 니트 몇 개 새로 들어온다던 그거. 그런데 잠깐. 방송 시간이 언제지? 목표 수량은? 심의팀한테 언제까지 자료 넘겨야 하지?
다시 메시지를 봐도 그런 얘기는 없다.
대표님께 다시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지난주에 이미 한 번 물어봤던 게 있었거든. 그때 "아, 그거? 저번에 얘기했잖아요" 하면서 살짝 귀찮다는 표정을 짓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사실 나는 그 '저번'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한 말인지, 회의에서 나온 얘기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을 내가 들었다고 착각하는 건지.
어쨌든 또 물어보면 "정신없이 사네"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그래서 그냥 추측으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지난번 론칭 때랑 비슷하겠지, 뭐.
며칠 뒤, 부하직원 ㅇㅇ가 내 자리로 왔다.
"선배님, 이번 촬영 컨셉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 맞다. 얘기 안 했구나. 나는 대표님이랑 디자이너랑 이미 정했던 내용을 당연히 민지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끼리만 카톡방에서 주고받은 얘기인데 말이다.
"아... 그게... 빈티지 무드로 하기로 했어요."
"언제요? 어디서요?"
또 순간 당황했다. 언제라니. 그냥... 하기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대표님한테 답답해하는 그 모습을 내가 ㅇㅇ한테 똑같이 하고 있구나.
사실 ㅇㅇ도 나한테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을 거다. 그런데 왜 안 물어볼까?
나도 알겠다. 무섭거든.
"그것도 몰라?" 하는 눈빛이나, "이미 말했는데?" 하는 한숨이나,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같은 말들. 그런 거 한 번만 들어봐도 다음번엔 입이 안 떨어진다.
그래서 모르는 채로 일하다가 나중에 틀리면 "왜 안 물어봤어?" 소리 듣는 거다. 참 아이러니하다. 묻기도 무섭고, 안 묻고 틀려도 혼나고.
퇴근길에 가면서 생각했다.
우리 회사만 이런가? 아니다.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다 비슷하다.
"우리 팀장은 맨날 '알아서 해' 이러더라" "근데 막상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그럼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던가"
모두가 답답해한다. 위에서는 "말 안 해도 알겠지" 하고, 아래서는 "말해도 소용없겠지" 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그냥 눈치만 본다. 슬랙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숨겨진 뜻이 있나 찾아보고, 회의에서 나온 말들을 되새기며 내가 놓친 게 있나 고민한다.
복잡한 거 아니다. 그냥 명확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방송은 목요일 오후 2시, 데님 000세트, 니트 000장 목표, 심의 자료는 수요일까지"
이렇게 한 줄이면 되는데.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바보 같은 질문" 같은 건 없다고, 확인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다음 주 이벤트 준비해주세요~"
어떤 이벤트인지, 언제까지인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또 정보가 절반만 있다.
하지만 이번엔 바로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벤트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일정이랑 규모도 함께요!"
살짝 떨렸지만, 나중에 틀리는 것보다는 지금 확인하는 게 낫다.
그리고 민지한테도 미리 얘기해줘야겠다. 내가 받은 답답함을 민지는 안 느꼈으면 좋겠거든.
30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이런 상황들. 완벽한 소통은 어려워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