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똑똑한 아이 처음 봤어요

by 다중성격자

우리 비그리를 봐주셨던 이모님이 늘상 하시던 말씀이었다.

"비그리 너무 똑똑해요, 여러 아이 봤지만 이렇게 똑똑한 아이 처음 봤어요"

두돌까지 봐주셨던 이모님이셨으니 똑똑해봐야 얼마나 똑똑한 모습이었겠냐마는,

나는 내심 '부모가 박사고 상위 1% 안에 들었던 사람들이었으니 뭐 당연한거 아니야?'라는 오만한 마음을 감추려 표정관리를 했더랬다.


그당시 국민 육아템 튤립 여러개를 가지고 있었는데(이후에 이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놀게 한 것을 후회하였다... 미디어 노출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나는 무슨색깔 튤입에 무슨 노래가 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돌무렵 이 아이는 노래를 들으면 책장에 가서 딱 그 책을 꺼내서 노래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딱 펼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 나도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또다른 일화.

그림자 이야기(또 하나의 미디어...)를 18개월 즈음부터 봤던 것 같다. 밤에 재우기 너무 힘들어서 즐겁게 재워보려고 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눈만 뜨면 자기 스스로 이걸 틀어서 보더니만 어느날 밥을 먹다가 생뚱맞게 발음이 뭉게져서 알아들을 수 없는 "ㅁ더ㅑ랮대ㅓ럊ㄷㅁ버"이런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아주 집중해서 들어보니 그것은 신데렐라의 한 문구였던 "생쥐는 말이 되고 호박은 황금마차가 됐어요"였다. 단어 두개 겨우 붙여서 말하던 아이가 갑자기 문장을!!!이라는 감탄을 무식하게도 했었다.

그 때 바로 병원을 예약했어야했었다.

두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들어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 나는 이 아이의 언어 발달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었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이 듣는 말을 기가막히게 기억을 잘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이건 청각추구의 결과물이었고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이 아이들은 여러가지 일상적인 자극 중에서 골고루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마도 예민함 때문에 괴로워서라도 그 감각을 열어놓지 못하는게 아닐가 추측한다.) 특정 자극에 집착하고, 그것을 잘 기억한다.

이 아이의 반응을 잘 살펴보면 감각의 문을 활짝 열어놓지 못하고 한 30%만 열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4돌이 지난 지금은 한 50%정도 열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 문을 반도 안열고 그 안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다 배우기는 힘들겠지...

비그리에게는 눈에띄는 퇴행은 없었으나 이렇게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제한된 경험과 감각 차단으로 3돌즈음 부터는 점차 다른 아이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인지왜곡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44개월 웩슬러검사에서 평균보다 낮은 경계선 수준의 지능이라는 결과지를 받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므로 자폐의 치료는 어쩌면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지 못다더라도 이렇게 2차적으로 파생되는 문제로 생기는 구멍을 최대한 매우기 위해 보통 아이들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 가르쳐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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