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3살 이전의 미디어 노출에 관하여

by 다중성격자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준비가 안된 엄마였다.

출산일 전날까지 보고서 마감에 시달리느라 아이를 어떻게 맞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학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이렇게 특별한 자폐성향의 예민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무방비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영유아 장난감을 보면 왠만하면 만3세 이상이라고 써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선물로 받은 사운드북, 튤립은 그 나이 아이에게 딱 적당한 놀이감으로 보였다. 자장가 사운드북 뒤에 3세이상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 보수적이네... 하고 그냥 열심히 아이에게 노출시켰다. 그거 밖에 아이하고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놀아주는 것이 너무 지루했다. 너무 지루해서 그 음악을 틀고 나는 노래하고 춤을췄다. (그때는 말을 못해서 듣고있었지만 5살인 지금 나한테 노래하지 말라고 한다 ㅎㅎㅎ)


나도 어린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었고 4살이 되기 전에는 보여주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나에게 미디어 노출이란 핸드폰, 탭으로 보여주는, 뭔가 시각적으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유튜브 영상정도의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비그리같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예민한 아이에게 사운드북과 튤립, 그리고 그림자이야기 정도도 매우 자극적인 미디어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되었다. 아마도 보통의 아이에게는 그정도의 노출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상품에 적혀있었던 3세이상 사용 지침은 보수적인 것도 사실이고, 비그리와 같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경고문구이기도 했다. 왜 이런걸 미리 교육해주지 않는걸까...


비그리는 청소기, 드라이기소리를 매우 싫어하고, 불빛이 번쩍이는 장난감도 기겁하고 울었다. 낯선 장소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는지 18개월 정도 되기 전에는 음식점이나 가게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오는 낯선 자극이 힘들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한다. 양가에 방문하러 가면 기본 30분은 울어서 안고 달래야했고 문화센터 방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울었다. 싫어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격한데, 반대로 이런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음악/소리는 또 얼마나 강렬한 자극이 되었을까?


36개월 즈음에 놀이치료를 시작할때 센터 원장님이 이런 사운드북 다 치우라고 말씀하시는데 머리를 방망이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가서 누르면 소리나는 것들을 다 치우고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늘렸더니 급속도로 핑퐁대화가 늘고 뭔가 상호작용의 질이 높아지는 듯 하였다.


그래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미디어증후군.


자폐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 감당하기 어려워 최대한 다른 단어를 찾고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치료를 1년 넘게 진행한 지금 여전히 그 나이 또래의 사회성과 화용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비그리는 미디어증후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케이스로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코끼리(자폐)라는 실체를 알고있지만 눈을 가리고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기를 여전히 하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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