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도 무던하지 못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폐 진단도 그러하다. 아래 내용은 이러한 나의 오만함과 무지가 범벅이된 글임을 미리 밝힌다.
경증 자폐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심지어 대학병원 교수도 오진을 하기 쉽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폐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사회성'의 결여에 따라 진단을 내릴 수가 있는데, 두세살 아이의 사회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러니 결국 몇 년 후 사회성이 발현되는 시기에 자폐로 확정진단 내려지는 아이가 높은 확률로 보이는 지표들로 '예측'을 할 수 밖에 없다.
구지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그래서 내가 좀 더 수긍할 수 있도록) 학령기 자폐 아이가 가지고 있는 프로파일이 y 벡터이고 어떤 특정 영유아의 임상적인 특성을 x벡터라고 한다면, Ax+a=y로 표현될 수 있을텐데, 문제는 A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a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느끼는 답답함은 x가 '관찰된, 주관적 판단에 의한' 행동의 모음이고, 그 행동은 자폐를 일으키는 본질적인(유전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어린아이일 수록 행동양식이 아이들 간에 크게 다르지 않고, 발달의 편차도 크므로 평균에서 벗어나는 문제행동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정의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비그리가 분노에 찬 땡깡을 쎄게 부리는 것을 할머니가 보면 그냥 "그 나이때 아이들은 그렇지 뭐"라고 지나가기 쉬우며, 그 말이 맞을 가능성도 크다.
즉, 자폐는 지금 현재 as is 행동을 대상으로한 진단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아이가 커가면서 변하는 as is 행동에 따라서 진단이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러하니, 여기서 다커서 자폐로 판정되는 아이를 이른 시기에 높은 확률로 스크리닝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임상 케이스가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 x와 y pair가 많을 수록 새로운 x'가 들어왔을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내가 비그리를 데리고 대학병원을 간 이유이다. 대학병원 의사선생님 앞에서 나는 점집에 온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여기서 나의 질문은 진단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6세 이하의, 특히 사회성이 발현되지 않은 만3세 이하에서 자폐 진단의 실익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자폐에서 조기 진단의 중요성은 거의 종교적인 믿음에 가까운데, 진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서 아이에게 취해지는 조치가 뭐가 다른가? 생각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유가 뭐가 됐던 문제 행동을 교정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놀이, 언어, 감통치료는 진단 전이나 후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달라진 점이라 하면 부모의 마음가짐.
병원 진료 이전에 치료부터 우선 시작한 내가 지금 가장 아쉽게 생각한 것은 병원을 소아정신과만 생각했다는 점이다. 만3세 이하의 아이들이 문제행동으로 보이는 것들이(비그리의 경우 예민한 오감) 많은 경우 신체발달과 관련이 되어있고, 신체발달이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고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런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우선 재활의학과를 예약했을 것이고, 특수체육과 같은 운동에 좀더 많은 치료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사회성'과 '정신'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기에 서너살의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