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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12)

이생에서 불가능한 것은 정리하기

2-3. 사회는 건너야 할 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건너야 할 강이지 영원히 머물 곳은 아닙니다. 강 사이에 다리가 있다고 그곳에 집을 지으면 삶이 불안해집니다. 사회는 적도 친구도 아닌 건너가야 할 강물이므로 배를 타던 수영을 하던 언젠가는 그 배를 강둑에 매어 놓고 홀로 갈 때가 누구에게나 옵니다. 주인이 되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법과 요소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없다면 강을 건너기 어려워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의 자살율이 높은 것은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생산력의 증가에 합당한 사회복지의 부족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무조건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흡수 통합되어 좀비처럼 집단화되어 사는 것을 경계하고 나의 가치관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즉 내가 살고 있는 사회나 문화와는 존재론적으로 거리를 두며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단 무의식이 제공한 가치관에 지배적 영향을 받으면 자신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분열된 마음을 가져오고 마음의 분열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어차피 승자는 소수인데 실패를 했다고 좌절 속에서 자기 비난까지 한다면 고행인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원하는 직장에서 불편함이 크게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좋다는 것은 쉽게 닮아가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직장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삶은 숲을 지나 원하는 곳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혹은 바다를 건너 목표지에 다다르는 과정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명확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고 배워야 할 것에 선명하게 깨어서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며 감사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린 개인적인 내면생활을 사회생활로 대치하기보다는 철저한 지성으로 엄격히 분리해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회조직 생활을 위해 내가 해내야 할 역할에 성실히 집중하되, 나라는 개체로써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켜가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적당히 뭉개는 태도보다는 경계하고 구별을 해내어 외부 에너지를 집으로 끌고 오거나 오래 담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본래 자유이며 비어 있는 빛의 실체이기 때문에 밖에서 오고 가는 것은 다만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사회생활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대체로 둘의 경계가 모호해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반복해서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지켜보는 것‘ 즉 위파사나 명상법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태도입니다. 일어난 일들을 마음으로 깊게 끌고 들어오지 않고 지켜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의 것으로 끌고 오지 않는 훈련이 가능합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내보내는 호흡을 크고 강하게 하면서 밖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들을 함께 쏟아내고 나로 돌아오는 연습을 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공격적으로 다가오면 호흡에 집중하며 한쪽 귀로 듣고 즉시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는 연습을 해봅니다.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는 다스리는 것입니다. 들어 온 마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호흡으로 의식을 일깨우면 빨리 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구별하며 철저히 깨어있어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은 창조력과 생명력을 키워 줍니다. 그러나 외부세계는 내면세계의 반영이므로 궁극엔 하나입니다.



2-4. 사회적 욕망 중에 불가능한 것은 내려놓습니다.


 앞에서 우리의 사회적 욕구에 전체적으로 몰두하기보다는 내면의 발견을 위해 에너지의 균형이 필요하단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각자만의 그러므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길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부터 이런 태도가 훈련이 될 때 지성이 눈을 뜨게 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사회적 성공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문화는 진전된 진보이며 틀에 박힌 결혼과 자녀출산에서 자유로운 태도 또한 그만큼 창조적인 태도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개인에 집중하고 자유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는 진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관습적인 무의식적 태도에서 벗어나 가치의 형성을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고 궁극의 자유를 향해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현 시대를 깨어남의 시대, 의식성장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해가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에서 모든 것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탐진치의 무절제한 마음입니다. 사회에 대한 맹목적 기대감과 일확천금의 기회를 갈망하며 불가능한 꿈을 꾼다면 현재 의식을 놓치는 마음가짐입니다. 가난하니까 부자가 되고 싶겠지만 부족한 것에 한탄하는 사고 패턴은 현재의 만족과 행복의 가능성을 잃게 합니다. 우린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자주 묻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인 것으로 자칫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농사꾼이 되어 자연과 살고 싶고, 청소부가 되어 거리를 깨끗이 하는 보람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더 나아가 소박하게 살면서 남에게 봉사하거나, 하루하루, 나를 존중하며 이웃을 존중하는 기쁨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적습니다. 혹은 일은 적게 하고 가난하지만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쁨으로 살겠다는 것이 꿈인 사람도 적습니다. 

 그러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지금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이렇게 자신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길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좌절된 삶을 자조적으로 바라보며 부정적인 감정을 인생 내내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박한 삶을 바라보며, 권력과 부를 가진 타인과 비교하며, 실패한 느낌의 열등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의 환경은 내가 선택한 유일한 것이고 소중한 것임을 깨우친다면 의식이 깨어난 것입니다.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자전거는 외발자전거보다 쉽고 빠르게 가듯이 내적 추구와 외적 활동의 조화로움은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내적 충족감은 '참되고 선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의 가치'를 잊지 않게 하므로 궁극의 깨달음과 이어져 있습니다. 

 참나의 자존은 외적 환경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참나가 꿈을 성취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터무니없는 희망을 내려놓고 허락된 것에 집중된 노력으로 하나가 될 때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내면의 힘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요가나 명상을 통해 창조력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도 적응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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