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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19)

3-10. 행복의 느낌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변화무쌍하여 나이를 먹을수록 잘 가꾸지 않으면 마음은 무거워지고 현실적이 되어가며 책임과 의무가 순수함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어린 시절의 나는 여전히 늙지 않고 마음속에 있습니다. 의식은 나이와 무관하며 나이를 먹지 않는 ‘참나’의 존재입니다. 즉 자세히 살펴보면 나의 삶의 외부는 변화했고 몸은 나이를 먹었지만, 내면에 변함이 없는 무엇은 늘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이 무언가 내 삶이 흘러가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지켜보아 온 ‘나’라고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의식은 몸과 마음이 건드릴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존’입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고민하고 슬퍼하는 마음에 휩쓸려 나를 잊기도 하고 버림 받았을 때 내가 작아져 무력하기도 했지만 늘 나라고 하는 존재로 돌아와 살고 있습니다. 이 나는 평생 함께 살아야 하고 삶과 죽음 너머에 있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행복하고 기뻤거나 평화로웠던 어린시절이나 순간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현존을 잊는 것에서 현존을 기억하고 돌아가는 것과 닮아있듯이 행복했던 체험으로 돌아가 그 느낌을 기억하는 것은 의식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행복과 감사나 기쁨의 순간이 신성이 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정말 행복할 때는 생각이 멈추고 온전히 가슴에 머물며 온몸이 행복의 따스함으로 감싸집니다.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이런 긍정 느낌을 불러내는 것은 한 시간 명상을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깊이 상처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외로웠다거나 부모님의 불화로 불안했다거나 왕따를 당해 슬펐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의 치유는 스스로 할 때 가장 빠르고 재발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를 떠올려 그때의 움츠러들고 슬퍼하는 나를 상상으로 만나서라도 따스하게 안아주는 이미지 치유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앨범을 꺼내 사진을 보고 하셔도 좋습니다. 시공을 넘어선 우리 두뇌작용은 공감능력이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자신의 원수가 아니라 친구가 되면, 현재를 분열된 내가 아니라 존재와 마음이 하나로 살아가면 자존감이 자라게 됩니다. 자신에게 행복이나 평화의 느낌으로 몰입하면 그것이 ‘위 없는 명상’입니다.      


    

4. 삶을 명상적으로 가꾸면 무조건 이익입니다.


(돈과 명예는 영원한 것이 아니지만 의식의 성장은 깨어난 만큼 이익입니다.)     


 조화로운 나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고 사랑을 가꾸어 가면 자신의 모습에 거짓을 버리게 되고 오늘 여기서 행복감을 느끼는 실력이 자랍니다. 삶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의식을 일깨우고 진심으로 진리의 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해 간다면 마음의 장난에서 깨어난 평화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명상이나 호흡법 만트라 기도 등의 수 많은 방편들에 오랜 시간 몰두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진리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나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을 통한 길은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이치를 깨우쳐 자신의 삶으로 체득해 가는 것입니다. 

 다음의 서술은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이해하고 참고삼아 노력해 본다면 깨달음이니 구도니 하는 거창한 목표에 시달리지 않고도 행복으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깨닫기 위해 오늘 고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린 오늘도 행복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지 이해하는 과정 즉 자신을 집중된 수용의 자세로 몸과 마음을 준비해갈 때 자연스럽게 편안해지고 평온한 체험 등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성적 사고와 예민한 감수성으로 마음을 이해하며 삶에 적용한다면 의도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준비가 되어, 자연스럽게 완전한 느낌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호흡이 깊어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평온한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수행과 각성의 방편을 활용하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수행중심의 길보다 안정되게 평화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참나는 현재의 평화와 고요이며 만족감이기 때문에 미래로 미루어 둘수록 에너지의 소모이며 억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없는 본래의 나를 잊고 헤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문제로 인식하는 생각과 생활 구조를 구체적으로 바꾸어 가면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속에서 본래의 나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명상이지 뜬구름 잡는 길은 스스로 좌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 실재적으로 체득된 것은 일시적 명상으로 얻은 평화보다 깊고 사라지지 않아 다음의 삶을 준비하게 합니다. 물론 명상의 이유와 원리를 알고 우주가 움직이는 법칙 속에 있는 내 삶의 특별함을 이해하는 노력은 삶을 통한 과정에 효과가 극대화되므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목적 의식적인 노력은 ‘하고 싶고 필요한 때야.’하는 내면의 소리가 명확해질 때 구체적인 도움으로 작용하므로, 누구나 해야 한다고 하는 상투적인 집단 무의식적 강요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쁜 현대인에게는 나를 일깨우는 삶의 모든 것이 방편입니다. 물질문명의 성장으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갈망은 어느 때보다 커졌고 자유와 사랑에 대한 이해와 욕망도 자라났습니다. 물질의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그보다 높은 가치와 자유와 진리 등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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