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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29)

혼자 있는 훈련의 소중함의 명상적 이유

5-5. 가능한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듭니다. 


 타인이나 어떤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 나의 에너지가 존재의 중심에서 끌려 나옵니다. 

 의존은 심리적인 것이며 동시에 육체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우린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아직 심리적 정신적으로 나이를 먹지 못한 탓이니 삶을 통해 홀로 있는 실력은 자라날 것입니다. 육체의 나이는 저절로 먹게 되지만 의식의 나이는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직면하는 힘이 깨어날 때 나이를 먹습니다.

 의식이나 존재는 타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홀로 서갈 때 성장하고 자신감과 삶에 대한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나 친지들과 섞여 있더라도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가족의 동의를 받아 자신으로 돌아와 있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때의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내면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항상 서로 적당히 어우러져 있어야 허전하지 않은 성격일수록 시도해 보면 자기 성장에 좋습니다. 인간 내면에 살아있는 능력은 타인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결국 배워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답게 나를 재창조하는 것도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 힘이 깨어나면 자신의 에너지로 합일되어 흩어지는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실력이 자라면 해탈체가 활성화됩니다. 우린 어떤 순간에 명확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합니다. 이것이 의식과 생각이 일치된 상태입니다. 이 에너지는 자기의식과의 만남으로서 굳건해지므로 집단 무의식에 흔들리지 않고 신념 있게 사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선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는 충동은 의식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구분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탐욕에 기반을 둔 한 생각은 의식이 동의한 것이 아니라 에고가 강화된 것입니다. 참되게 선한 마음은 스스로 보호하고 지켜가지만, 남을 해치는 충동은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입니다.


 누군가 간섭하면 나는 쉬는 중이란 표현을 하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철저히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갖고 항상 누군가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외부로 열어 놓는 것보다는 가능한 전체적으로 자존에 집중하며 홀로 있음을 즐겁게 즐겨 봅니다. 처음에 혼자 있으면 지나가는 잡다한 생각이 많아질 수 있으나, 그 생각에 마음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공간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면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고 히말라야의 동굴 안에서 외부 파동 없이 사는 요기처럼 자신을 열어놓고 본래의 내 마음과 생각으로 돌아가 편안히 쉬는 것이 좋습니다. 이 휴식 속에서 미묘하게 침묵과 고요가 느껴진다면 그것이 참된 명상입니다.

 일인 가구가 증가하는 것을 사회 문제로 보기도 하지만 인간의 전체적 의식이 과거 어느 때 보다 높아져, 혹은 높아지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이기도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비혼주의자가 되는 것을 사회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홀로 사는 것의 자유와 멋을 알았기 때문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혹은 산책을 하면서 가능한 긴장을 풀고 쉬다 보면 다른 에너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내면을 발견하는 기회가 됩니다. 이때 휴대폰을 꺼 놓는다든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하는 일을 멈추고, 긍정적인 마음을 심거나 호흡의 편안함에 집중하면 존재에 집중이 되어갑니다. 반복하다 보면 어색하지 않으며 새로운 느낌이 찾아옵니다. 팃낫한 스님이 오직 의식을 발에 집중하는 걷기 명상을 수행의 도구로 삼았듯, 무의식적으로 멍 때리며 걷는 행위에 의식을 조금 더하기 해보는 것입니다. 고요해진 몸과 마음을 환영하며 그 상태에 평온한 마음을 살짝 얹혀 가능한 유지해 봅니다. 침묵의 상태를 멍하게 두지 않고, 긍정적인 느낌들을 공급해 그 마음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습관은 그동안 걱정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이때 직감적으로 의문을 갖고 있었던 질문에 답이 떠오르기도 하고 막혔던 곤란함에서 벗어날 지혜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습관적 사고 두뇌과정에서 해결할 수 없는 답이 내면에 잠재해 있다가 빈 공간이 생기면서 튀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붓다가 설파한 정견(바른 생각)과 정사(바른 생각)는 우리 내부에 늘 존재하지만 다만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올 기회가 없을 뿐입니다. (성향이 외향적이라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어울려야만 휴식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원칙과 조화로움을 잃게 되면 휴식하고, 에너지가 정화되는 방식이 각자 다르며 나이와 상황에 따라 변천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활용해 갑니다.)



5-6. 몸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합니다.


  몸도 마음처럼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 몸이 좀 더 살아나고 건강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취하여 생긴 긍정에너지는 전체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행복한 본성의 의식이 깨어남에 한발 다가가게 합니다. 

 선호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변화해 간다는 고유의 특성을 인정하면, 나 자신과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므로 소통의 에너지 또한 활발해 집니다. 우선 지금 내 몸이 원하는 음식에 귀 기울여 먹는다든가 내 몸이 원하는 목욕을 한다든가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잠만 잔다든가 하는 것은 몸이라는 구체적인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첫 걸음이라 아주 중요합니다. 

체질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당기는 음식이 다르고 건강 상태에 따라 끌리는 음식이 다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즐거운 자기 사랑입니다. 몸과 마음에 귀 기울여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어떤 것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가까이 있는 것을 즐기며 좋아하는 태도가 자랄수록 행복에 쉽게 감응하는 감성지수도 높아집니다. 멀리 있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하길 좋아하는 에고는 만족을 모르지만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을 기울이면 소중한 것 즐길만한 것들은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족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습관적으로 자라나야 불만족스런 상황에서도 끈기있게 견디는 힘을 만들어 줍니다. 저장해 놓은 긍정 에너지와 만족 습관은 지성인의 문화적 태도이며 감성입니다.

 그리고 손을 많이 움직일수록 즐거운 사람이 있고 두뇌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감지능이 없는 사람은 소통의 즐거움을 모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같은 노력으로 얻는 만족도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취미와 에너지가 통하는 대상을 가까이 하는 편이 좋겠지요. 몸과 마음을 무시한 금욕적 태도는 명확한 이유가 없는 한 굳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자유의 본래 참나로 다가가는 길입니다. 금욕은 자기 학대의 한 표현이고 지나친 쾌락은 자기 방기의 습관이니 적절한 성생활도 부정적인 마음 없이 즐겁게 누리는 편이 건강합니다. 스와디스타나챠크라나 물라다라챠크라가 활성화된 인간이 에너지를 억압만 한다면 다른 챠크라로 상승하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가슴 챠크라는 아래 세계의 챠크라가 막힘이 없이 활성화 될 때 사랑의 힘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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