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셋째날
마음이 바쁘다. 덩달아 남편도 서두른다. 이른 아침 별내역까지 날 배웅한다.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 한다.
“응 고마워요”
전철에 자기를 단단히 묶고 나서야 숨을 돌린다.
오늘은 남한강 자전거길의 종착지인 충주댐까지 다녀올 계획이다.
지난 6월 북한강 자전거길의 종착지인 춘천댐까지 다녀왔다. 봄엔 벚꽃길을 달렸는데 이 가을엔 어떤 풍경이 남한강 자전거길에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욕심대로라면 밝은 광장인증센터에서 충주댐까지 달려야 하는데 돌아올 시간과 차편을 두루두루 고려해서 여주역에서 출발하여 충주댐 종착지를 찍고 다시 탄금대를 지나 충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호남고속버스터미널 돌아오는 코스다. 그리고 터미널 근처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난 맨몸으로 다시 집이 있는 별내로 갔다가 내일 순천으로 내려갈 때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가야 한다.
‘도대체 이 복잡한 일을 왜 하는 걸까?’
이유는 없다 좋아서다. 내년에 퇴직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하면 이렇게 복잡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내년의 체력을 장담할 수 없고, 내년에는 또 내년대로 갈 데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를 남편은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고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니 그저 고맙다. 두 시간 가까이 전철을 타고 여주역에 내렸다.
‘와 이제 또 시작이다. 잘할 수 있을까? 혼자 지치지는 않을까? 위험한 상황은 없을까? ’ 내심 염려도 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가보자며 나를 다독인다.
낯선 도시에서 자전거길 입구를 찾는 게 아직은 익숙지 않다. 오락가락 헤매다 입구를 찾아 궤도에 오르면 이미 반은 지난 것같이 마음은 안심이다. 긴장하며 찾은 자전거길 입구에 들어서자 나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 기쁜 일이 생겼다.
강 건너 신륵사가 보일쯤 반대편 쪽으로 외국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전거 양쪽에 짐보따리를 잔뜩 묶었다. 가끔 외국인 부부가 자전거 종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었는데 저 남자도 그들 중의 하나인가 보다 하며 반가운 마음에 한 손을 들어 “헬로” 하며 인사를 했다.
순간 ‘어 나 뭐지? 아주 자연스럽게 헬로가 나오네?’
나의 인사에 상대편 남자도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뒤로 10살쯤 된 여자애도 따라온다. 이어 엄마 되는듯한 여자도. 모두 자전거에 짐이 가득하다. ‘아 가족이 함께 왔나 보다. 멋지다’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주자가 달려온다. 14살쯤 돼 보이는 남자애인데 그 애 자전거에도 짐이 한가득하다. 그 애를 보면서 “파이팅”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저들을 바라보는 내가 왜 이리 즐거운가? 내 소망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라이딩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대리만족하기 때문이다.
이 외국에까지 와서 가족이 함께 라이딩하면서 캠핑까지 하니 너무 멋지다. 부모와 자녀들이 비록 몸은 힘들어도 저 라이딩 여행을 통해 얼마나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며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까? 부럽다.
강천보인증센터에서 인증스탬프를 찍고 천천히 달린다. 한참을 지나 강천리섬으로 들어간다. 여주에 이렇게 넓고 맑은 공원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야외에는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인근의 주민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쉬면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다시 출발하려는 그때 또 한 가족의 라이더들을 만났다. 젊은 부부는 9살 6살 남매를 데리고 라이딩 중이란다. 아이들도 각자의 자전거를 탔다.
“세상에 어디까지 가요? ”물으니 나의 목적지와 같은 충주댐까지 간단다.
“어머 세상에 애들을 데리고요?” 나도 차라리 저들을 따라가고 싶다.
강천섬을 지나 강원도 원주의 한 자락을 달린다. 그리고는 드디어 충청북도 충주시의 경계에 들어선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출발해 여주시를 지나 원주시 그리고 충청도까지 3개의 도를 달린다. 주말이긴 해도 라이더들이 많이 없다. 가끔 둘씩 아니면 혼자 달리는 이들을 마주한다. 하기야 이 멀리까지 누가 오랴. 많은 구간을 혼자 달린다. 외롭고 쓸쓸하고 때론 무섭기도 하다. 다리도 무겁고 엉덩이도 아프며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그래도 아직 반이나 남았다. 가야 한다. 이번까지만 달리면 앞으로는 쉬엄쉬엄 타리라.
비내섬인증센터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에서 모인 사람들이 많다. 내가 달릴 때는 않보이던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이곳 비내섬은 여러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한가 보다. 여기저기 유명 드라마 포스터가 붙어있다. 내가 아는 드라마도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한적한 곳에서 도시락을 펼친다. 찰밥에 멸치조림을 넣어 뭉친 주먹밥에 김치 조금. 꿀맛이다. 후식으로는 사과하나. 커피를 좋아하면 커피로 카페인과 당을 충전하겠지만 커피를 마시면 몸은 피곤해도 잠을 못 자니 카페인 충전도 탄산 충전도 없이 시원한 샤인머스캣 충전이다.
다시 짐을 꾸려 달린다. 얼마쯤 갔을까? 이번엔 외국인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보였다. 그도 자전거여행을 하나보다 자전거 여기저기에 짐이 많다.
헬로 인사를 주고받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미국에서 왔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 DO YOU KNOW 자두?” 말하니 눈이 휘동 그래진다. 백문이 불연일견이라 했지. 가방에서 주먹만 한 자두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그가 웃었다. “DELICIOUS ”하며 그에게 건네니 웃으며 “THANK YOU”한다
아침에 힘들 때 먹으라고 남편이 챙겨준 건데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에게 주었다. 순간 또 오르는 게 있었다. “DO YOU KNOW 초코파이?”하며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 건넸다. 그는 반색하며 웃었다. 손을 들어 하이 화이브를 하고 난 먼저 자리를 떴다. 그는 우리나라가 환상적이라고 했다. 그 환상적 중에 나도 있으면 좋겠다.
국토 종주 자전거길이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다녀보면 서울의 한강 자전거도로만 길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고 나머지 지방의 자전거길은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농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같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론 숲으로 때론 여름에 내린 비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혼자 그 길을 찾아가려면 때론 무섭기도 하고 낯설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침 바람은 찼는데 햇살이 비친 오후는 덥기도 하고 몸도 무겁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휴일이라 여기저기에서 캠핑하는 사람들을 보면 맛있는 것 먹으며 편안하게 쉬는 데 왜 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하면서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구를 탓하랴?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만 완주하면 다시는 이런 고행 사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물론 지켜지지 않을 게 뻔하지만. 목행대교를 지나니 오후에 늘어진 햇살을 맞으며 공원에서 파크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운동하고 여유를 갖는다. 이제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충주댐 인증센터다. 이럴 때 누군가 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힘을 내자고 응원할 텐데.
드디어 충주댐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어 뭐 이래 충주댐은 보이지 않네’
충주댐은 보이지 않고 인증센터만 있다. 난 춘천의 의암댐 주변을 달렸던 것처럼 충주댐 주변을 달릴 것을 기대했나 보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는 끝이다. 갑자기 그 무거웠던 몸에 힘이 솟는다. 돌아간다. 집으로.
충주댐인증센터를 찾아갔던 길을 다시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목에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인 탄금대인증센터가 있다. 여기를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인증사진을 찍고 스탬프도 찍었다. 이제 완승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는다. 5시가 조금 넘었다. 이 정도면 아주 완벽하다.
이제야 배가 슬슬 고파온다. 버스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간식을 꺼내먹고 물도 마신다.
‘아 오늘도 난 너무 멋졌다.’
‘다음엔 또 어디를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