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여행

59번째 가을 -둘째날 밤

by 노크

청와대 사랑채를 나와 세실극장과 성공회 빌딩에 갔다.

199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66년에 완공된 성당으로서 로마네스크 형식과 한국의 전통미가 가미된 아름다운 성당이다. 외형은 십자가 형태를 띠며 다양한 선이 조화를 이루는 게 외국의 여느 성당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문화재 35호로 지정되어있단다. 성당 안쪽으로 한옥 한 채가 정갈하게 앉아있는데 이는 경운궁 양이지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궁의 일부를 매각하자 성당 측이 매입해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 역시 서울 등록 문화재 267호인데 현재는 사제들이 사용하는 사목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양 건물과 한옥이 절묘하게 짝을 이루고 있는 게 무척 인상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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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찬찬히 둘러보면서 흡사 외국에 유명한 성당을 구경한 듯 경이로웠다. 마침 성당음악회를 준비하느라 열린 문으로 아름다운 성가가 흘러나와 로렐라이 언덕 전설처럼 나도 모르게 성당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성당의 내부는 외국의 성당만큼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정갈하고 소박한게 우리네 정서와 맞는 분위기였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하오의 햇살이 부드럽고 온화해 신은 은총이 성당 가득 머무는 느낌이었다. 종교색은 달라도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고요해졌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성당의 높은 첨탑은 어느새 붉은 노을빛에 잠기고 고요한 종소리는 밀레의 그림 「만종」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각각의 사무실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퇴근하는 소시민들은 만종 속의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하루도 감사했음을 가슴에 안고 지하철에 버스에 몸을 싣고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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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나와 아들과는 잠시 작별을 했다. 저녁 시간엔 혼자 있고 싶었다. 오랜만에 여유 있게 서울의 밤공기를 마시며 걷고 싶었다. 얼마 만이던가. 이렇게 여유롭게 걷는 일이

늘 갈급한 마음에 이곳에 오지만 돌아가야 하는 부담감으로 발걸음이 재발라졌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껏 이곳을 누비리라. 서울 시청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광장은 「서울 야외도서관」이라는 제목하에 광화문 광장 그리고 청계천까지 야외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야외도서관으로 꾸며졌다.

이 서울광장 잔디밭에 넓은 색색의 의자를 펼쳐놓고 아이든 연인이든 누구라도 편히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청계천에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누구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곳곳에 책과 앙증맞은 호롱불이 함께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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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책이 읽히지는 않겠지만 책을 가까이하자는 의미에서의 이벤트는 참으로 신선하고 색달랐다. 나도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흐르는 청계 전은 많은 서울 시민은 물론 서울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 이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는 이색적인 장소다. 나도 이 청계천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래서일까 서울에 오면 늘 찾아온다. 아버지가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시는 병원 밖을 나오지 못하고 먼 길을 가셨다. 그해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기쁨으로 떠들썩하던 이 청계천 광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손주의 손을 잡고 “ 내가 또 이곳을 언제 와 볼 수있으려나” 하는 말을 아쉽게 내뱉고 다음 날 병원에 입원하셨었다.

아버지 묘소보다 더 자주 찾는 이곳 청계천.

흐르는 물 따라 나도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


나의 발걸음은 다시 방향을 틀어 경복궁이 있는 광화문 광장 쪽으로 향한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가기 위해 서울여행을 계획할 때도 있었다 언젠가 부터 우리 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다 공부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이 궁에 왔었다. 오늘은 궁 밖에서 궁을 바라본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저만치 밤이 내린 광화문에 조명이 은은히 비춰지니 그윽한 자태가 한복 입은 여인네처럼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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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빛이 흐르니 가을밤의 연회라도 하듯 마음이 설렌다. 가끔은 궁의 밤을 생각해본다. 모두 퇴근하고 고요한 궁에 왕과 왕비 그리고 왕자와 공주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왕자와 공주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직도 분수에서 뿜어나오는 물거품이 싫지 않은 이 세종로 광화문 광장엔 여기저기 의자와 탁자들이 자유롭게 놓여있다. 퇴근후 집에 가기 전에 들른 사람도 이곳에 약속하고 모인 사람도 나처럼 지나가다 앉은 사람도 모두에게 편안한 의자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흡사 유럽의 노천카페처럼 늦은시간에도 도란도란 웃음소리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정겨워 보인다. 나도 의자에 앉아 본다. 서울의 한복판에도 10월의 가을밤이 들판의 누런 벼들이 익어가듯이 무르익어 간다. 이 차가운 콘크리트 벽, 높은 빌딩에도 가을은 오색 물빛을 들이나보다. 문득 자동차 소음 속에서도 지하 어딘가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덕희님의 시에 곡을 붙여 안치환이 부른 노래 귀뚜라미를 떠올리면서.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소리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부를 때마다 마음에 긴 여운이 남는다. 이시는 소외된 존재와의 공감과 소통에 대한 기대와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는 한 마리 귀뚜라미다.



혼자만 들을 수 있게 노래를 부르며 내 발걸음은 다시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진다. 연인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누군가는 덕수궁 돌담길이 완벽하게 하나로 이어지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영국 대사관저 부분에도 완벽하게 길이나 하나로 이어지게 됐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돌아볼까? 헤어질 연인도 없고 같이 걸을 누군가도 없지만 외롭지 않다. 가을이 함께 걸어주니까.

몇 해 전 이마 때는 친구와 함께 이곳을 걸었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던 그때의 쓸쓸함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가을마다 덕수궁 돌담길 앓이를 한다….

저만치 정동교회가 보인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문세의 노래


이젠 모두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나도 언젠간 세월을 따라 떠나가겠지.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그리고 이 노래를 만든 이영훈 작곡가처럼

사람은 떠나도 남는 건 무얼까?

그리움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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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은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녕히 스민다.

이제는 돌아가야겠다. 배가고프다고 아까부터 아우성치었다. 뭘 하나 사 먹으면 될 텐데 왠지 그건 좀 낯설다. 전철역을 찾아 내려간다. 이제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이곳인데도 왜 이리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걸까? 이 청아한 계절 가을의 덕수궁을 10월의 이 거리를 떠나기가 아쉬워서이리라.

언제와도 좋은 곳이지만 이 계절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그윽함을 아주 오래 오래 누리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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