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며칠

2025년 6월 22일

by 노크
앞으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은 순천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으며 정년퇴직 전 직장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며 쉬었던 시간들의 글이다. 남편과 둘이 내려왔다가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9개월 남은 정년을 마무리하는 회환의 글이다.


밤새내라던 비가 소강상태다. 일찍 시작한 장마전선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비를 뿌린단다.

모두가 긴장하며 기후위기를 염려한다. 아침이 되니 비는 그쳤지만,

종일 하늘에 구름이 가득할거라고 예보한다.

예배를 다녀와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 어 내일 자전거를 택배로 보내기로 했지? 그럼 오늘이 이곳에서 자전거와 마지막인데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생각이들었다.

서둘러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정리를 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섬진강 편에서 아직 마치지 못한

두 코스가 있다. 향가유원지에서 섬진강 댐까지 40킬로 정도. 출근 안 하는 요즘은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서울의 한강 길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여자인 내가 라이딩을 할때는 되도록이면 주말에 간다.

주말엔 주중보다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혼자 라잉딩을 하는 나로서는 혹여나 있을 위험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주말에 라이딩을한다. 이것저것 라이딩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이 급해 머릿속은 복잡하다.


'정말 사람들이 있을까? 지금 가면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는 건 아닐까?

참 어제 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도로는 괜찮을까?'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나에게 물어본다.

야 너 정말 갈 생각이 있는 거야? 지금 너 안갈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의 핑계만 찾고 있잖아……. 가고 싶으면 가서 확인하고 안되면 그때 돌아와도 돼.
중요한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잖아.

자전거를 차에 싣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전북 순창에 있는 향가유원지까지는

고속도로를 타도 한 시간이 걸린다. 마음이 급하다.

2시 30분부터 주행을 시작했다.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 달리게 되어있는

자전거길은 구례와 하동의 섬진강 자전거길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구례와 하동을 지나는 섬진강 길은

강물과 마을 뒤편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데 이곳은 산밑이 강물이다.

산의 장엄함이 물에 비추어 강물이 산을 안고 있는 양 깊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인해 물줄기는 세차고 흙빛 물은 사납게 흐른다.

흠뻑 빗물 먹음은 풀들은 일제히 일어나 그 키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곳곳이 침수로 인해 통행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우회도로를 안내한다.

그럼에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내가 목표한 곳까지 갈 수 있는지 페달을 밟아본다. 나외에는 아무도 없다.


내일 아침에 자전거를 택배로 보내면 다시는 이곳에서 라이딩 할 기회는 없을 거다. 그래서 서둘러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시간이 빠듯해 목표까지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괜찮다.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는 게 의미 있는 나이이다.

굽이 굽이 강줄기를 따라 돌다보면 산이 보인다. 제법 높은 산들은 순천의 낮은 산과는 다르게 위엄이 있다. 저만치 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듯 보이는 산가까이 지난다.

그리고 산과 산 사이를 이어 주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저게 그 유명한 순창 적성면과 남원 대강면을 이어주는 출렁다리인가보다.

사진을 찍으려 자전거를 세우고 카메라를 드니 사람들이 조심조심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인다.

얼마나 아찔할까? 엉금엉금 기어가는 느낌이들겠지. 그래도 가보고 싶다. 다음에는 등산을 와야겠다.


마을 마을은 한산하다. 가끔 나와 앉아 바람을 쐬는 노인 한두 명을 만나는 게 전부다.

불어난 강물에도 강태공들은 낚싯줄을 던져 고기를 낚느라 세월을 던지고 있다.


이모든 풍요로움과 평온함은 이제는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적한 이곳을 떠나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채광에 따라 변하는 산의 색깔과 다 비슷한 것 같아도 모두 다른 마을의 풍경

그리고 하늘빛과 닮은 강물과 공기의 느낌까지 마음에서 잊지 않으려고 꾹꾹 눈에 담았다.


새로 이사하는 곳에도 하늘이 있고 강물이 있으며 공기가 있겠지만 이곳의 하늘이 아니고

여기의 공기가 아니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

생각해보면 11년 긴 시간을 이 자연들이 있어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뒷산부터 걸었다.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고.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탔다. 걸을 때는 숲속이 좋았다.

천천히 걸으며 말을 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강물이 좋았다. 같이 달리 수가 있어서.

자전거는 좀 다 먼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새로운 길로 새로운 세상에.

집에 돌아올 때는 비록 몸은 피곤해도 나는 가슴에 또 하나의 별을 달았기에 빛났다.

그 별이 하나씩 늘어나는 게 좋았다. 그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고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이었으며

내가 견뎌내는 힘이었고 나를 성장 시키는 기회였다. 그때마다 함께 해준 건 자연이었다.

하늘과 숲과 나무와 돌 그리고 물과 공기까지……. 말없이 그 모든 시간을 날 품어주었고 받아주었던 자연

그 자연에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동안 고마웠어. 많이 그리울 거야.

어느새 구름 사이로 인사하러 나왔던 햇살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 엷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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