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3일
앞으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은 순천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으며 정년퇴직 전 직장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며 쉬었던 시간들의 글이다. 남편과 둘이 내려왔다가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9개월 남은 정년을 마무리하는 회환의 글이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은퇴 이후에 관한 책이다.
하고많은 책들을 놔두고 왜 이런 책에 끌리는 걸까?
한 달 전만 해도 미술사나 명화 관련 책을 탐독했는데말이다.
사실은 은퇴 전에 읽었어야 하는 책들인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무원들은 은퇴 전에 사회적응기간이라는 시간을 주면서 은퇴를 잘 준비하도록 한단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현직에 있을때에 끝없이 은퇴 이후를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바빠 정작 은퇴준비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은퇴준비인지 모르는게 현실이다.
먼저 은퇴한 선배들이, 또는 은퇴설계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 와 닿지않았다. 노심초사는 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그러다 막상 은퇴를 맞이하니 막연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 은퇴를 체감하지는 못한다.
퇴직에 관한 책을 읽어도 나이 듦에 관한 책을 읽어도 아직은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아직 늙었다고
생각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 몸하나 움직임에 구애 받지 않으며 가끔씩 서두를 때 빼놓고는 기억력도 아주 좋고 누구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 되서 일거다. 아직은 5년은 더 현직에 있어도 무리 없이
모든 일을 해날 수 있는 자신도 있다.
퇴직급여를 받을 때까지도 퇴직이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많던 적든 일정 금액이 통장에 꽂힐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고 내 나이에 이력서를 넣을만한 적절한 일 자리가 없음에 당황할 것이고 기대하며
이력서를 넣었는데도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조차 없을 때 그때서야 내가 은퇴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절히 느껴질 것이다.
은퇴한 많은 선배들이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는 말은
이전의 나를 잊어라다.
왕년에 내가 잘 나가는 회사의 부장이었고 과장이었던 것을 잊어야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은퇴이후의 일자리는 은퇴 전의 일자리에 비해 현저히 일자체가 단순하며 임근도 저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감사해야할까?. 나는 30년을 쉬지 않고 일했지만 한 번도 감투를 써보지 못했다. 그 흔한 대리조차도...
대략 10년 주기로 직업이 바뀌었다. 어린이집 원장, 미션스쿨의 종교교사 그리고 이곳에서의 사회복지사.
17살이나 어린 팀장과 함께 일한 사원. 장애인들의 하루를 돌보는 업무가 전부인 일반 사회복지사였다. 높았던 직급도 없었고, 왕년에 내가 하며 내세울만한 이력도 없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
나는 생일이 3월이라 전반기에 맞춰 퇴직을 한다. 7월 1일 자로 은퇴한 퇴직자이다. 9개월간 법적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올해 12월까지 6개월만 나라돈을 받고 내년 1월부터는 다시 현직에서 일해볼 계획이다.
생계형 직업군이라 나는 70살까지 일해야 하고 또 일하고 싶다. 아니 건강이 허락한다면 75세까지는 일하고 싶다. 이건 주 5일제 월급형 현직을 말한다. 이후에는 85세까지는 흔히 말하는 노인형 일자리라도 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거다. 남의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고, 아직도 누군가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땀 흘려 받은 돈으로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고 싶다. 헌금도 드려야 하고 손주들 과자도 사줘야 하고 자녀들에게 밥도 사고 싶다.
그러려면 잘 나이 들어야 한다.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이 이후에 10년을 바라보며 긴 계획을 세우되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하자.
매일 한편씩 글을 쓰고
책을 읽고(마음에 드는 문장을 기록해 두고)
6개월 동안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짜고 실천 계획을 세우며
정년퇴직한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드러낼 수 있는 인격을 갖추기 위해 나를 가꾸자. 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초심과 여유로움의 미소를 잃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