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며칠 전

2025년 6월 26일

by 노크
앞으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은 순천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으며 정년퇴직 전 직장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며 쉬었던 시간들의 글이다. 남편과 둘이 내려왔다가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9개월 남은 정년을 마무리하는 회환의 글이다.



늦잠을 잤다.눈은 떴으나 몸음 깨어나지 않았다.몇 번을 뒤척이다 일어나니 9시다.

짐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일후면 떠날 이곳 . 차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가야한다.

처음 이곳에 올 때보다 짐은 조금씩 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전혀 짐을 늘일 생각이 없었는데도 짐은

부지불식간에 늘어났다. 짐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필요 때문에 산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가로부터 받아서

생기는 짐도 꽤 많다. 근래에 감자 철인지 지인 셋이 감자를 주었다. 직접 농사지은 거라면서….

짐을 정리하는 데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내가 꼭 가져갈 물건. 그리고 버려도 아쉬울 것 없는 물건.

세 번째는 주고 가고 싶은 물건. 나름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구분하며 정리한다.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일상을 사느라 바쁘면 마음의 정리가 안 돼서 복잡할 때가 있다. 감정과 생각들이

차곡차곡 서가에 종류별로 꽂힌 책들처럼 들어가고 나오고가 잘 되면 좋겠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없으면 사서의 손길 없이 아무렇게나 꽂힌 책처럼 내 생각과 감정들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모르기 일쑤다. 그러다 감정이 더 쌓일 수 없이 포화상태가 됐거나 그 감정선에 누군가가 성냥불이라도

붙이는 날엔 다이나마아트가 되고 원자폭탄이 되어 터지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마음 정리를 잘하는 것같이 언제나 평온하고 맑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게 늘 어둡다. 그럼 나는 어떤가?

기질상 뭐든 잘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유형이다. 물건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다.

하루를 살며 일과 사람을 통해 주고 받은 감정을 정리해서 마음 서가의 유형별 아이콘에 잘 정리

해두어야 하는데 일단은 감정정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에 대한 내 태도 결정하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버릴 것인지,

남겨두어 곱씹을 건지, 도로 상대에게 던져 줄건지 등등. 그 고민으로 밤을 새울 때도 있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사람에게 거리를 둘 때도 있다. 원칙은 나름 분명하다.

좋은 감정은 잘 정리해두고 불편한 감정은 서둘러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살이가 원칙대로 되던가? 특히 마음이 하는 일이?

그리고 감정이란 게 어떤 건 완벽히 좋은 감정이고 어떤 건 완벽히 나쁜 감정이라고 명명하기 쉽지 않다.

그 감정들을 어떻게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냐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잘 정리되고 성숙하면 결국은 인격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위를 지나 소장에 들어가 영양분을 섭취하고 나머지는 대장으로 들어가

수분을 흡수시켜 남은 찌꺼기를 단단하게 만들어 항문으로 배출하도록 한단다.

이렇듯 우리의 감정들이 내 안에 들어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영양소만 남기고

나머지 감정의 찌꺼기들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잘 배출할 때

내 마음도 정리가 되어 깨끗한 마음 집이 되고 그런 집을 가진 사람에게 많은 친구가 놀러 오는 그거 같다.

어느 날은 눈은 감고 마음으로는

자자 제발 자자

외치며 잠을 청해보지만 씻지 않고 자려고 할 때의 찝찝함처럼 잠은 오지 않고 더욱더 감정선만 깊어져

날을 셀 때 가 있다.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마셔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조용히

명상도 해본다. 그러나 그래도 잠이 안 온다.

그러면 일기장을 펼친다. 물론 이미 감정을 한바탕 쏟아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시 손가락에 힘을 주고

펜을 들어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인가 한 글자 울음 토하듯이 토해내야 그제야 감정이 정리된다.

두리뭉실 막연히 달래기만 했던 감정들과 허공에 떠돌아다녔던 생각들. 정리됐다고 생각했던

사유의 조각들이 이제 정확한 이름표를 달고 마음 서가에 꽂혔다. 그제야 잠을 잘 수 있다.

이제 내일은 그 사유를 잘 나눌 수도 있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어서는 모두가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일 수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바쁘게 달려가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난 그 바쁨의 경주를 완주했다.

그렇게 바쁘게 뛰지 않아도 된다. 때론 뛰어야겠지만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도 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감상해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걷는 도중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봐도 된다.

걸러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남아있어 삶이 뻑뻑 한 건 아닌지 그래서 정리가 필요한 건 아닌지 말이다.


내게 있어 감정정리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쓰는 일에도 숙달된 기술이 필요하다. 좋은 펜도 아니고 질 좋은 종이도 아니다.

마음심 깊은 곳에서만 퍼 올려지는 은혜·내 힘으로 되지 않는 불가불의 은혜 용서의 마음이다.

감히 내가 뭐라고 그들을 용서 할 자격이 잇단 말인가?
당연히 없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나를 용서하는 것이다.

나이 듦의 품격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좋은 기억들을 집중적으로 기억하고 그것들을 축복하세요. 그리고 나쁜 기억들은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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