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며칠

2025년 6월 21일

by 노크


앞으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은 순천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으며 정년퇴직 전 직장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며 쉬었던 시간들의 글이다. 남편과 둘이 내려왔다가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9개월 남은 정년을 마무리하는 회환의 글이다.


빗소리에 잠을 깼다. 아직 7시가 못 됐다. 빗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일까?

약속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그것도 주말에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은 조금 약 오른다.

주말이겠다. 비도 오겠다. 딱히 약속도 없는 이런 날은 늘어지게 잠을 자도 되는데. 몸이 벌써 깼다.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일까?

잠은 깼음에도 여전히 시계를 보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몸을 깨우지 못했던 많은 날이 있지 않았나?

출근하지 않은 지 20일 가까이 된다. 앞으로 새일을 시작하기 전 얼마 동안은 이렇게 일찍 일어나겠지?

근 30년 동안 9시 전까진 출근했던 몸에 밴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까닭일까?

아니면 이제는 그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에 반응하는 내 몸일까? 가야 한다면 일어나기 싫고

가지 않아도 된다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나의 몸으로.

아직은 혼자인 자유를 만끽하는 나의 일상

이제 그 자유도 한 열흘 정도 남았다. 이곳을 정리하고 남편과 살림을 합치면 우린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서로를 간섭할 것이다. 애정이든 잔소리든.


눈곱만 떼고 주섬주섬 가방을 꾸려 도서관으로 간다. 나의 집이고 거실이고 독방이고 놀이터이며

카페인 도서관. 답답한 원룸을 벗어나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이 잭 저 책들을 넘나들며 책 여행을 하는

이곳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우주 공간이다.

누구는 사 놓으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는 생각으로 제목만 마음에 들어도 책을 사둔다 하지만,

어미인 나는 나보다 아이들의 운동화나 가방이 먼저인지라 내가 사고 싶은 책도 마음껏 못 샀다.

나이 먹은 지금도 나를 위해 지갑을 여는 게 쉽지 않은 마음 졸보는 늘 도서관 책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이 도서관의 모든 책이 내 것이다. 정년퇴직은 이런 횅재를 나에게 선물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 있으면 노트를 꺼내 적는다.

어떻게 이런 문장과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문장들이지만 이렇게 적어놓고 곱씹는 것만으로도 언젠가는

그 문장의 반쯤이라도 닮을 수 있겠다는 기대와 소망을 담는다.

도서관의 이른 아침과 밤늦은 시간이 좋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들어오면 나처럼 이 시간을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있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눌 정도로 한 달 새 익숙한 얼굴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책과의 대화를 나눈다. 난 책을 읽다가 노트북을 열어 조각조각의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어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상념에 젖는 듯하다.


세찬 빗줄기는 단단한 시멘트에 온몸을 부딪치며 하염없이 애원을 한다. 나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흰 거품 품은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딪히며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원하듯

대답 없는 갯바위에 물거품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처절함처럼 쏟아내는 빗줄기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꿈적하지 않는 시멘바닥에 상처 입은 빗줄기는 하수구로 서둘러 제 눈물을 숨긴다.

어릴 적 처마 밑에 서서 비를 피할 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땅을 페어 때론 우묵하게 들어간

자국을 본 기억이 난다. 서로에게 빈자리를 내어주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그때.


나는 시멘트 바닥이었을까? 팬 땅이었을까?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곁을 내주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한 시멘트 바닥은 아니었을까?

뜨거운 여름태양 같은 사랑도 품어내지 못하고 촉촉이 스며들겠다고 찾아오는 가을바람 같은 영혼에게서

돌아서고 늘 외롭다고 긴긴밤을 홀로 울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갑자기 권정선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이 생각난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에 스며들었을 때 비로소 강아지 똥도 빛났고 민들레도 그 노랑 빛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동화는 강아지 똥의 가치에 초점이 있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서로에게 스며드는 연합의 의미, 함께라는 의미가 주는 교훈도 있다. 젊은 날에는 강아지 똥의 가치에만 마음을 두었다. 비록 나도 강아지 똥 같은 인생이지만 언젠간 가치 있게 쓰일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와 열심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가치보다는 함께 할 때

더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나이가 먹어서인 걸까? 지난 시간이 부끄럽다.


은퇴에 대한 초조함이 있었고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 불안과 초조함에 내가 잠식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나를 고요하게 할 것이고 나는 받아들임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 연습과

더불어 천천히 걸을 때 보이는 그것들을 사랑할 것이고 노래하리라

나이 듦은 천천히 걸을 때 보이는 것들의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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