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며칠

2025년 6월 20일

by 노크


앞으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은 순천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으며 정년퇴직 전 직장생활 마지막을 정리하며 쉬었던 시간들의 글이다. 남편과 둘이 내려왔다가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9개월 남은 정년을 마무리하는 회환의 글이다.


하늘이 온통 잿빛이다. 구름은 서둘러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냉정함마저 느껴진다.

그녀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나 보다. 바람 이 그녀의 눈물 받아 따라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겨진 하늘도 울겠지? 큰소리로. 천둥이 칠 것이고 번개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떠나간 그녀를 잡지 못한 절규의 눈물을 쏟아내겠지…….

윗지방은 그렇게 벌써 비가 쏟아지고 있단다. 장맛비가…….


눈을 떠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도서관에 왔다. 출근하듯.

10년 동안 몸담고 일했던 직장에서는 지금쯤 시간에 맞춰 일과가 진행될 것이다.

그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책을 보고 종일 도서관에 있고 싶다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지만,

막상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나의 생각은 늘 그랬다.

시간이 많다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건 아니더라는 것.

바쁜 와중에 짬짬이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플 때 퇴근 후 도서관에 들러 한쪽 구석에 앉아 사서가 나를 찾을 때까지

남미 여행책 한 권 붙잡고 먼 나라로 훌쩍 떠났다.

질풍노도의 아이들이 마음을 후벼 놓을 땐 시 집 한 권이 내 마음을 위로했다.


가끔은 도서관에서 글쓰기 교실이나 시인 학교가 열린다. 퇴근 후 고픈 배를 쥐어 잡고도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70년대의 야학처럼 불을 밝히고 시심을 밝혔다.

그때 과제로 냈던 글들이 제일 간절하고 절실하게 썼던 글이었다.

일상의 바쁨과 복잡함 속에서 누리는 나의 고요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고 헤어진 후

오랜만에 전해 듣는 옛 애인의 소식처럼 설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서두름도 급함도 필요 없이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가야 한다.

난 정년퇴직했다.

내 나이 60. 최소한 30년을 달려왔다. 아직은 일하기에 아주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도 얼마간의 쉼이 필요하다. 30년을 달려왔으니. 앞으로 새 일을 한다 해도

이전 같은 강도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일은 둘째치고 내 삶의 속도도 많이 느려지리라.

의무와 책임감도 많이 내려졌으니.

그게 나이 먹음의 축복이리라.

누군가가

나이 듦은 하나님의 은총을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지난 시간의 은총이 잘 보이도록 그 창을 정갈하고 깨끗하게 닦아야겠다.

그 창을 통 해 보이는 지난 시간 속의 추억을 하나씩 한 줄씩 글로 적어보리라.

정년 이후에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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